핀란드 국민음악의 대가, 장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는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와 넓은 공간감을 관현악으로 옮겨놓은 듯한 곡이다.
소리는 날카롭게 서 있고, 리듬은 굳세게 전진하지만, 곡이 진행할수록 서서히 온도가 바뀐다.
다소 억눌린 듯한 시작에서 금관이 주도하는 날선 고조로 치닫은 후, 분위기는 반전되며 긴장이 쌓인다.
눌림과 각성을 번갈아 불러내는 선율이 한 곡 안에 조화롭게 압축돼 있다.
곡이 탄생한 1899년 배경은 한국의 근현대사와도 무척 닮아 있다.
당시 핀란드 대공국이라는 이름으로 근대적인 핀란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지만,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언론·출판 검열이 강화되어 직접적인 구호는 허용되기 어려웠다.
극작가 카를로 베르그봄(Kaarlo Bergbom)은 총 6막으로 이루어진 핀란드 역사 연극을 만들었는데, 연극의 음악을 시벨리우스에게 의뢰했다.
연극은 1899년 초연되었고, 최종막인 '핀란드는 각성한다' 부분의 반주음악을 편곡해서 발표된 곡이 '핀란디아' 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자국 내 이 곡의 연주를 금지하여 '핀란디아'로서 초연은 1900년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시벨리우스는 베를린과 빈에서 수학했지만, 예술적 정서의 바탕은 당연히 북유럽의 풍경이다.
숲과 호수, 긴 밤,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겨울에 가까운 기후가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었다.
그는 낭만주의 대신 음향을 압축해 밀도 높은 선율을 선보였고, ‘핀란디아’는 그 미학이 대중적으로 농축된 결과물이다.
곡의 하이라이트는 중반 이후 등장하는 코랄(성가) 풍 선율이다. 격정은 가라앉고 차분하고 긴 호흡의 선율이 곡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흔히 ‘핀란디아 찬가(Finlandia Hymn)’로 불리는 이 부분은 이후 가사가 붙으면서 핀란드의 상징이 되었다. 원래 관현악 흐름 속 하나의 장면이지만, 특유의 안정감으로 기억되며 독립적인 곡이 되었다.
이 교향시는 종종 한국의 ‘한국환상곡(Symphonic Fantasia Korea, 안익태 작)’과 함께 언급된다. 애국가 선율을 중심에 두고 관현악으로 확장해 ‘국가의 아픈 기억’을 환기한다.
‘핀란디아’는 왜 겨울에 특히 잘 어울릴까? 그것은 차가운 금관의 선율과 두꺼운 현이 함께 만드는 냉기가 먼저 공간을 채운 뒤, 그 속에서 서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따뜻함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고, 차가움이 충분히 농축된 다음에 드러난다.
겨울이 가진 감각— 폐를 파고드는 듯한 날선 공기, 말라버려 단단해진 흙, 강한 바람이 빚어내는 요란한 침묵.
곡을 감상할 때는 처음부터 한 번은 끝까지 듣고, 다음에는 코랄 선율이 등장하는 지점을 의식해 다시 들어보면 좋다.
폭풍과 멈춤이 왜 같은 작품 안에 공존하는지, 그리고 그 간격이 어떤 풍경을 남기는지 선명해진다.
겨울의 음악은 차가울 수 있지만, ‘핀란디아’는 그 차가움이 오히려 우리의 정신을 맑게 만든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