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로 지방 산업 지도를 바꾸고 있다. 정부 투자유치(IR) 행사인 ‘인베스트코리아 서밋(IKS)’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투자 신고가 이뤄진 가운데 투자액의 97%가 비수도권에 집중되면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청정에너지 등 첨단산업 외국인투자가 비수도권에서 새로운 성장 축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5일 KOTRA(코트라)에 따르면 4~6일 열린 ‘IKS 2026’에서 7개 첨단 외국 기업이 총 20억 2750만 달러(약 2조 7200억 원)의 투자를 신고했다. IKS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2023년 9억 4000만 달러(약 1조 2600억 원) 수준이던 투자 신고액은 3년 만에 116% 늘었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IKS에는 방한 투자가 200여 개 사를 비롯해 외투기업, 주한 외교사절·외국상의 등에서 2000여 명이 참석했다.
22회 IKS의 가장 큰 특징은 비수도권 투자 비중이 97%(19억 5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점이다. 투자 분야도 반도체·AI 데이터센터·에너지 등 첨단산업에 몰렸다. 영국 AI 인프라 기업인 엔스케일이 구미에 아시아 최대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엔스케일은 국내외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구미하이테크밸리에 1.3GW 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를 중심으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 예정된 광주에도 미국 앰코테크놀로지(앰코)가 투자를 결정했다. 반도체 후공정 분야 세계 2위 기업인 앰코는 기존 광주 제조시설을 증설해 첨단 제조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 기능도 지방으로 향한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인 영국 에드워드와 일본 이비덴, 자동차부품 기업인 프랑스 발레오는 비수도권에 있는 연구시설을 외국인투자기업 R&D센터로 새로 지정받았다.
외국인투자 기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도 참여한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의 프로젝트는 모두 대규모 전력을 전제로 한다. 이에 싱가포르 거린에너지는 전남 진도·고흥과 경북 경주에 태양광·육상풍력 인프라를 건설하기로 했다. 노르웨이 딥윈드오프쇼어는 전남 여수에 해상풍력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
이번 투자로 국내 반도체 소부장 공급망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용 특수 가스를 생산하는 프랑스 에어리퀴드는 AI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가스 공급을 위해 국내 투자를 결정했다.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첨단 장비 공급망 고도화에, 독일 헨켈은 AI 및 차세대 반도체용 패키징 소재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글로벌 기업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가 간 경쟁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 대한 높은 신뢰와 반도체를 필두로 한 제조·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이 이번 대규모 투자의 배경이 됐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피지컬 AI 기업인 덱스터리티의 사미르 메논 최고경영자(CEO)는 인베스트코리아 콘퍼런스에서 △한국의 우수한 하드웨어 및 전자산업 기반 △로봇 시스템 통합과 대량생산 역량 △기술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서의 잠재력 등을 한국 투자의 매력으로 꼽았다.
다만 현장에서는 외국인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현승 코펜하겐오프쇼어파트너스(COP) 코리아 최고개발책임자(CDO)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풍력발전의 특성상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종결이 돼야 착공에 들어갈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인허가를 비롯한 정책 불확실성 탓에 다른 국가 대비 1~2년이 추가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안정수 롯데에어리퀴드 대표도 “산업통상부가 2024년 시행한 ‘청정수소 발전입찰시장(CHPS) 제도’는 당시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선진적인 에너지 전환 유인 정책이었지만 정권 교체 이후 표류 중”이라며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투자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한 현금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지역 투자 확대 및 균형 성장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