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직장인들이 회사에 대한 헌신 대신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를 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재단이 4일(현지시간) 공개한 영국사회태도조사(BSA) 분석 결과 회사의 성공을 위해 요구받은 것 이상으로 일할 의향이 있다는 근로자 비율은 2015년 69%에서 지난해 55%로 14%포인트 떨어졌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오르던 흐름이 꺾인 것으로, 하락 폭은 관리직·전문직에서 가장 컸다.
일에 대한 만족도도 바닥이다. 주된 일자리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도 답하지 않은 근로자가 4명 중 1명에 달했다. 35년 조사 역사상 가장 나쁜 수치로, 같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했던 2015년(5명 중 1명)보다 늘었다.
해나 슬로터 레졸루션재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조용한 퇴사는 말 그대로 증거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삶에서 다른 것을 우선하려는 코로나19 이후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며 “생산성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팬데믹 이후 극도로 부진하다 최근에야 조금씩 나아지는 영국 생산성의 배경을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슬로터 이코노미스트는 “재택근무 확산으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약해졌을 수 있다”고 봤다. 또 “회사가 이미 더 많은 일을 요구하는데 승진이나 임금 인상, 업무 재량의 기회는 줄어든 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임금 업종에선 일이 더 고되고 불안정해졌다는 우려도 오래전부터 나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승진 기회가 있다고 본 근로자는 2015년 35%에서 지난해 25%로 줄었다. 반면 개인 사정으로 한두 시간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관리직·전문직은 같은 기간 25%에서 36%로 늘었다.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 근로자들이 오히려 ‘늘 일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에서 마음이 멀어지는 현상은 연령과 직군 전반에서 나타났다. 다만 만족도 하락과 풀타임 기피는 남성에게서 훨씬 두드러졌다. 30~49세 남성 가운데 풀타임 근무를 원하는 비율은 2015년 86%에서 지난해 67%로 19%포인트 급감했다.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같은 흐름이었다. 18~29세 남성도 17%포인트 줄었다.
그런데 실제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30~49세 남성 비율은 그대로였다. 원하지 않는데도 풀타임으로 일하는 남성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여성은 모든 연령대에서 풀타임 희망 비율에 큰 변화가 없었다. 30~49세 여성 가운데 실제 풀타임으로 일하는 비율은 오히려 11%포인트 늘었다. 아예 일하고 싶지 않다는 엄마들의 비율은 크게 줄었는데, 무상 보육 확대와 유연근무 덕분인 것으로 분석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