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명
논설위원
15년 전인 2011년 8월 나라 곳간이 거덜나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를 취재했다. 그리스의 자존심인 파르테논 신전으로 올라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곳곳에서 걸인들이 빈 깡통을 앞에 놓고 관광객들에게 구걸했다. 해외 채권자들은 파르테논 신전 등 문화유산을 포함해 75조 원 규모의 국유자산을 팔아 빚부터 갚으라고 독촉했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은 직장과 생활 터전을 잃은 시민들의 시위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 걸린 걸개그림에는 ‘IMF와 맺은 긴축 조치를 거부한다’는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전액 무상인 대학 등록금, 공짜 수준의 국립병원 의료비, 총인구의 10%에 달하는 과잉 공무원, 저소득층 비과세 등 달콤한 포퓰리즘 정책이 낳은 ‘그리스의 비극’이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죽비 같은 경구가 통한 것일까.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는 뼈를 깎는 구조 개혁과 고강도 긴축에 나섰다. 기득권 저항이 컸지만 연금 개혁과 무상 의료 폐지, 공무원 임금 삭감 등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였다. 노동시장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해외 자본 유치와 같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대거 채택해 기업 투자와 고용을 유도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고진감래의 열매는 달았다. 최근 3년간 성장률은 2%를 웃돌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고 2020년 206%에 달했던 국가부채 비율은 140%까지 떨어졌다.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모범생’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주도했던 프랑스가 15년이 지난 지금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신음하고 있다. 낭만의 상징인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는 생활고에 지친 성난 시민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포퓰리즘 정책 남발 탓이 크다. 프랑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0%로 독일·영국(55%)보다 훨씬 높다. 당초 65세였던 연금 지급 연령을 60세로 대폭 낮췄다가 재정난을 자초했고 이를 다시 올리는 과정에서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흥청망청 재정 운용에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6%에 불과했던 재정적자는 5.1%까지 치솟았다. 재정 고갈에 성장률은 지난해 1%대 아래로 떨어졌고 올해는 0.4%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프랑스는 망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too big to fail)에서 구제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too big to save)로 바뀔 수도 있다”고 꼬집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과 15년 사이에 그리스와 프랑스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 원인은 명확하다. 포퓰리즘 유혹을 떨쳐낸 재정 운용, 기득권 저항을 넘어선 과감한 구조 개혁, 시장 친화적 정책을 통한 기업 투자 확대 등이 국가의 성쇠(盛衰)를 갈랐다. 국민을 설득하며 ‘변화와 혁신’에 나선 그리스는 부활의 길을 걷고 있고 ‘돈 자랑’에 빠진 프랑스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인과응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나.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0조 원으로 사상 최대다. 반도체 초과세수 등을 재원으로 160조 원의 미래대응기금도 조성했다. 2030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22.7% 급증한 1724조 원에 달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닥치고 확장재정’이다. 되레 ‘재정긴축이 포퓰리즘’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한다. 글로벌 추세에 한참 뒤처진 노동 개혁은 눈감은 채 주 52시간제와 노란봉투법에 이어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도 밀어붙이고 있다. 거대 노조의 눈치를 살피는 개혁의 퇴보다. 국민연금 개혁도 발등의 불인데 차일피일 미룰 뿐이다.
반도체 풍년에 힘입어 올해 연간 수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서고 성장률도 3%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도체 썰물’이 빠져나가면 화려한 수치에 가려진 우리 경제의 허약한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그나마 반도체가 받쳐주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재정·노동·연금·규제 등 전방위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그리스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프랑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지금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