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4일(현지 시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싹쓸이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국정 동력을 상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더 센 무역정책 등을 들고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올해 대미 무역흑자가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방위비나 원자력 협력 등에서도 스텝이 꼬일 수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 타깃이 해외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의회와 충돌이 많아지면 결국 대중 관계나 동맹국과의 문제와 같은 대외 이슈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겠느냐”며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이 증폭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관세정책의 경우 기존에도 대통령 행정권을 활용한 ‘의회 우회 전략’을 펼쳐왔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공격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정책에서는 꾸준히 의회 우회 전략을 펼쳤다”며 “민주당이 관세정책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통과시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의 경우 사법 판단이 나오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관세를 정국 돌파 카드로 쓸 경우 지난 3월 개시한 무역법 301조 조사 중 과잉생산 건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한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에 강제노동을 근거로 무역법 301조 기반 10~12.5%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과잉생산을 빌미로 여기에 추가 관세가 가능한 구조다.
역대급 반도체 호황으로 대미 무역흑자가 신기록을 썼다는 점도 부담이 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은 1023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494억 9000만 달러의 두 배 넘는 규모를 벌써 달성한 셈이다. 허 교수는 “미국산 에너지나 농산물을 더 구매하라 하거나 대미 투자 한도를 늘리라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한미 양국의 이견이 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의 투자 규모를 더 늘리거나 총 8기 원전 건설 사업에서 우리 측에 더 불리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 또한 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임성남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조지 W 부시 2기 정부 때도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잃은 뒤 외교 분야에 정책적 에너지를 쏟았다”고 말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가 6자 회담을 통한 북한과의 대화, 인도와의 민간 핵 협정 협의 등을 진전시키며 여소야대 형국에서 성과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 대입해 보면 트럼프가 미북 대화에 힘을 더 실을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중간선거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원자력협정과 같은 굵직한 외교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진단하면서도 면밀한 의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 의회가 바뀌어도 한미 간 현안에 당장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며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민주당에서 맡는다 해도 전작권 전환 문제는 행정부 소관이고 한미 간 안보 분야 협의도 행정부 간 합의를 미 상원에서 검토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사 미 의회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막아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다만 “미국 내의 경제민족주의, 공화당 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 등 미국의 정치적 다이내믹에 따라 한미 관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의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