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장기 재정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복지 지출을 국회예산정책처 등 외부 기관과 비교해 과소 추계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 의무지출인 복지 지출을 과소 추계하면 성장 투자 등에 쓸 재정 여력이 실제보다 넉넉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재정 건전성도 좋아 보이는 일종의 분식회계 효과도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우리 재정에서 세출은 물론 세입도 그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커 보수적인 예측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는 물론 최소한 내년까지도 반도체 초호황이 이어진다는 관측을 내놓지만 인공지능(AI) 리스크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모습을 드러낼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반도체 세수 호황에 기대 미래 지출을 늘렸다가 복지 지출이 계획을 웃돌면 투자를 줄이거나 추가 차입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정부가 ‘재정 댐’으로 만든 미래대응기금조차 일시적 세수로 계속 사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담겨 있어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 지출 오차는 특히 국민연금에서 크게 나타난다.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향후 5년간 국민연금 급여 지출액을 318조 원으로 추계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보다 21조 원 많은 339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연금 재정을 추계하는 국민연금연구원은 같은 기간 342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기금 편성의 토대가 되는 연구원 전망보다도 24조 원 더 적게 잡은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국민연금 지급액을 낮게 잡았다가 부족분을 뒤늦게 메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2022~2025년 4년 연속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급여 지출을 각각 3조 5000억 원, 2조 9000억 원, 5000억 원, 1조 2000억 원 늘렸다. 일회성 예측 실패가 아니라 과소 편성과 사후 증액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구직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을 지급하는 고용보험 의무지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향후 5년간 85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예정처는 이보다 9조 6000억 원 많은 95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상반기 출산과 육아휴직 이용이 예상을 웃돌아 육아휴직급여 예산이 빠르게 집행된 점 등을 반영한 결과다. 최근 지급 실적을 반영한 예정처 추계에 비춰보면 정부가 계획한 지출 증가 폭은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기초연금 또한 정부는 향후 5년간 136조 원이 들 것으로 잡았지만 예정처는 이보다 6조 4000억 원 많은 143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저소득층에 더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부부 동시 수급에 따른 감액도 완화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지출을 추계하면서 소득 구간별 전액 수급자와 감액 수급자의 비율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저소득층은 국민연금 수급이나 부부 동시 수급에 따른 감액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데도 정부가 이런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급여 인상에 따른 추가 지출을 낮게 잡았다는 게 예정처의 분석이다.
복지 의무지출뿐 아니라 지방 이전 재원과 이자 지출 등의 전망 차이까지 반영하면 예정처가 추계한 향후 5년간 총지출은 정부 계획보다 79조 9000억 원 많다. 2030년 총지출은 정부 계획보다 30조 6000억 원 많은 1035조 8000억 원에 달하고 의무지출 비중도 정부 예상인 53.5%를 넘어 54.9%로 높아진다. 늘어나는 의무지출을 감당하면서 연구개발(R&D)과 성장 투자 또한 확대하려면 다른 지출을 조정하거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의무지출 증가로 재정 여력이 좁아지는 가운데 미래대응기금마저 지속적인 지출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미래대응기금 사업비 45조 4000억 원의 58.4%는 기존 사업을 옮겨온 것으로 아동기본수당 등 줄이기 어려운 지출도 포함돼 재원이 줄면 일반회계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미래대응기금 공청회에서 “오늘의 호황으로 시작한 사업의 부담을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계속 사업은 일반회계에 편성하고 기금은 세수 변동 완충과 한시적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두 기관의 전망 차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재정 운용 목표가 전망치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예정처는 현재 제도와 여건에서 실제 발생할 지출을 추계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두 기관의 전망 차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중기적인 의무지출 증가 추세를 반영해 예산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한 번 도입한 복지사업은 축소하기 어려운 만큼 향후 지출 규모에 대한 정교한 추계가 필수적”이라며 “의무지출 추계마저 부실하면 앞으로 재정적자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