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피해를 낸 바이낸스 해킹 사태로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했지만 국내 가상화폐 거래는 오히려 이틀 새 45.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의 거래 대금이 바이낸스의 해킹 의혹이 제기된 지 한 시간 만에 약 27배로 뛰었다. 해킹 여파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고 다음 매수 기회에 쓸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 자산 일부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겼다는 분석이다.
3일 가상화폐 정보 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바이낸스 해킹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기준 국내 5대 거래소의 합산 거래 대금은 20억 7700만 달러로 전날 같은 시각보다 16.6% 늘었다. 사고 전날인 29일 기록한 14억 28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이틀 새 45.4% 증가했다. 가상화폐거래소 해킹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5% 떨어지는 등 주요 가상화폐가 급락했지만 국내 거래 대금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거래소별로는 코인원의 거래 대금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지난달 31일 코인원 거래 대금은 사고 전날인 29일 같은 시각보다 142.5% 늘었다. 디지털엑스(63.4%), 업비트(34.7%), 빗썸(32.9%), 고팍스(1.1%)가 뒤를 이었다. 코인원과 디지털엑스의 거래 대금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데는 두 거래소가 진행 중인 수수료 면제 이벤트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가액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가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업비트 거래 대금은 약 2억 9300만 달러 늘어 5개사 전체 증가액의 45.1%를 차지했다.
특히 USDT와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거래가 몰렸다. 업비트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5시 6억 3000만 원 수준이던 USDT 거래 대금은 해킹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오전 6시 171억 원으로 한 시간 새 약 27배로 뛰었다. 이날 USDT는 한때 업비트의 24시간 거래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대로 올라 종목별 거래 대금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USDT 수요가 급하게 치솟으면서 국내 시세에도 프리미엄이 붙었다. 해킹이 발생한 당일 오전 2시만 해도 해외보다 0.04% 싸게 거래되던 업비트의 USDT 가격은 해킹 이후인 오전 6시에는 해외 시세를 1.16% 웃돌았다.
역대급 해킹에 가상화폐 가격의 추가 하락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 일부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면서 거래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USDT와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거래소에서 다른 가상화폐를 사는 데 보편적으로 쓰이고 개인 지갑에 넣어놓았다가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다른 가상화폐로 바꾸기도 쉽다. 보유하던 비트코인 등을 팔아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두면 가격이 더 내려가더라도 그만큼의 손실을 피할 수 있을뿐더러 다음 매수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자금을 달러 가치로 보유할 수 있는 대기 자금이 되는 셈이다.
안광호 타이거리서치 연구원은 “이번 탈취 대상에는 국내 투자자들도 많이 보유한 주요 자산이 포함돼 있어 추가 하락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USDT로 자금을 옮겼을 수 있다”며 “보유 자산의 가격 하락에 대비하면서 시장이 안정되거나 매수 기회가 왔을 때 다시 투자할 대기 자금을 확보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거래소의 보안을 우려한 국내 투자자들이 익숙한 국내 거래소로 자산을 옮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바이낸스에서는 출금 재개 직후 대규모 자금 이탈이 나타났다. 바이낸스에 따르면 지난 1일(현지 시간) 오후 3시 출금을 단계적으로 재개한 뒤 2일 오전 0시 30분까지 9시간 30분 동안 출금액은 46억 4900만 달러, 입금액은 10억 1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순유출액은 36억 4000만 달러(약 4조 8830억 원) 규모로 해킹 발생 전날인 지난달 28일 기준 바이낸스 총 운용 자산 1710억 달러의 2.1%에 달했다.
안 연구원은 “대형 거래소가 해킹을 당하면 투자자들은 추가 피해나 출금 중단을 우려해 자산을 다른 거래소로 옮기려 할 수 있다”며 “바이낸스 출금 재개 이후 OKX 등 다른 거래소로 자금이 유입된 것도 이러한 움직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