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팹) 하나를 2년 먼저 돌리면 그 기간에만 매출 50조 원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력·용수·인허가 문제를 풀어 공기를 단축하고, 1600조 원+α 규모의 민간 투자를 지역 성장과 신산업 육성으로 연결하는 ‘속도전’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의 ‘3대 메가프로젝트: 국가 성장 플랫폼이 되기 위한 과제’ 공개포럼에서 “팹 1개를 2년 먼저 가동하면 그 기간에만 50조 원의 매출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광주 팹 건설을 예로 들어 통상 5년 걸리는 공사를 3년으로 줄이면 앞당긴 2년 동안 제품을 생산해 이 같은 매출을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이를 광주·전남의 지역내총생산(GRDP) 약 150조 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매출 규모로 소개하며 “그래서 정부가 속도전·진격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아우르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는 저성장과 지역 불균형을 함께 풀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김 장관은 1600조 원+α가 민간 기업의 투자계획이라는 점을 짚으며 지방의 대규모 투자를 지역 성장과 AI 산업 주도권 확보로 연결하겠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인재가 머물 정주 여건과 교육·문화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성공 조건으로 꼽았다. 반도체와 AI 분야의 소재·부품·장비 및 협력 기업을 키우고 일자리와 수출로 성과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아니다 싶으면 바꿔야”…속도와 협업의 조건
김 장관이 말한 속도에는 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신속히 바로잡는 능력도 포함됐다. 그는 “가다가 길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길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다. 조직 수장이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구성원들이 문제를 말하지 못하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협업 역시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김 장관은 “진짜 협업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프로젝트”라며 부처 간 협력은 물론 대기업·중소기업, 대학·연구소의 참여를 주문했다. 전력과 용수, 인프라, 자금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어느 한 기업이나 기관의 역량을 넘어선다는 판단이다.
그는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그 효과를 경제 전반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혁명으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를 한국의 도약 기회로 삼겠다는 취지다.
메모리 투자, 국산 칩 판로와 제조업 경쟁력으로
이준 산업연구원 전략산업연구센터장도 한·미 간 메모리 기술 격차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만큼 생산시설을 빨리 짓는 쪽이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중국의 추격과 업황 변동에 대비해 비메모리 경쟁력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민간 반도체 투자 881조 원이 모두 메모리와 메모리 패키징 생산능력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를 키우도록 반도체 특별회계에서 비메모리·소부장에 최소 배분 비율을 적용하자는 제안이다.
관건은 국산 칩을 사줄 시장이다. 그는 “수요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2019년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에서 부족했던 수요 연계를 이번 메가프로젝트로 보완해야 한다고 봤다. 데이터센터에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실증·조달을 연계하고 로봇용 칩은 수요·공급 기업이 함께 개발해 제품 적용까지 약정하자는 구상이다.
그는 “지원을 받는 것만큼 생태계에 기여해야 하는 게 반도체 기업의 의무”라며 전력·용수 등 정부 지원을 국산 소부장 조달 확대와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산 칩의 수요처가 될 데이터센터 역시 고객 확보가 과제다. 정병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2035년 수전용량 18.4GW(기가와트) 목표를 “있는 수요라기보다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되는 수요”로 평가했다. 현재 국내 수요 전망만으로는 목표를 채우기 어려운 만큼 AI 에이전트와 제조업의 피지컬 AI 활용을 늘리고 해외 고객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1단계 8.4GW는 국내 수요를 중심으로 추진하되 2단계 10GW는 핵심 고객과 전력망 연결이 확보된 뒤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AI 활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메가프로젝트가 시설이나 생산능력 확대에 그칠 수 있다며 확보한 연산 능력을 산업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도입의 성과를 제조 현장에 남길 장치도 제시됐다. 박민원 창원대 총장은 해외 AI를 도입하더라도 제조 데이터의 활용권과 학습 성과는 국내 기업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 데이터의 활용권을 기업에게 주고 기업이 활용권을 결정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고령 숙련자의 경험과 기술을 피지컬 AI로 전환해 청년의 제조업 창업으로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숙련자는 로봇을 가르치고 작업 결과를 검증하는 역할을 맡고 지역 대학은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구상이다. 중견·중소기업이 참여해 품질·안전·경제성을 확인하는 실증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학습에서 생산 실증까지 현장에서 실천하는 피지컬 AI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