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40년 전 오늘인 1986년 10월 31일, 서울의 한 목욕탕에서 40대 여성이 음료수를 마신 뒤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이는 훗날 채권자와 여동생, 시누이 등을 잇따라 독살한 연쇄살인범 김선자(1939년생)의 첫 번째 범행이었다.
김선자는 빚을 갚지 않거나 금품을 빼앗을 목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9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며, 국내 마지막 사형 집행일인 1997년 12월 30일 다른 사형수 22명과 함께 형이 집행됐다.
목욕탕서 시작된 연쇄 독살…빚 갚으려 지인들 노렸다
김선자는 건설 현장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남편과 세 아들을 둔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유흥과 도박으로 씀씀이가 커지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갚아야 할 돈이 불어나자 채권자를 살해하거나 금품을 빼앗는 범행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첫 번째 희생자는 같은 동네에 살던 계모임 회원 A씨(당시 49세)였다. 김선자는 A씨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한 뒤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목욕탕을 찾았다.
A씨는 탈의실에서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신 직후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당시 A씨가 착용하고 있던 귀금속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선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지만 범행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A씨의 죽음은 당시 심장마비에 의한 돌연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비슷한 사건은 이듬해에도 발생했다. 1987년 4월 김선자에게 700만원을 빌려준 또 다른 계모임 회원 B씨(당시 50세)가 시내버스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B씨는 김선자와 함께 영등포 방면으로 이동하던 중 그가 건넨 음료를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1988년 2월에는 김선자에게 120만원을 빌려준 여성 C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김선자와 동행하던 중 음료를 마신 C씨는 구토 증세를 보였지만 목숨을 건졌다. 이후 김선자는 C씨에게 빌린 돈을 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이어 여동생·시누이까지…가족까지 이어진 연쇄 독살
김선자의 주변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은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
1988년 3월 27일에는 김선자의 아버지가 친척의 환갑잔치에 참석한 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당시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로 판단됐지만 이후 연쇄 독살 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한 달여 뒤인 4월 29일에는 김선자의 여동생이 시내버스에서 숨졌다. 김선자는 여동생에게 1000만원을 빌린 상태였으며, 그가 숨진 뒤 금품을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7월 8일에는 시누이 관계인 친척 여성도 목숨을 잃었다. 김선자는 집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돈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만난 뒤 다방에서 독극물이 섞인 음료를 건넨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이후 버스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당시 김선자가 피해자에게 빌린 돈은 484만원으로 파악됐다.
집 안에서 청산염·피해자 금품 발견…1997년 사형 집행
사건의 실마리는 마지막 피해자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988년 7월 시누이 관계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은 부검을 의뢰했다. 검사 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독극물인 청산염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김선자와의 금전 관계를 확인했다. 이어 앞서 숨진 사람들도 김선자와 가까운 사이였으며, 사망 직전 그와 함께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같은 해 9월 1일 경찰은 김선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귀금속과 수표 등 금품이 발견됐다. 화장실 벽 틈에서는 신문지에 싸인 청산염도 나왔다.
경찰은 김선자를 연쇄 독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9월 2일에는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경찰은 이미 매장된 피해자들의 시신을 다시 꺼내 부검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독극물 중독 여부를 확인해 김선자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김선자는 수사 과정에서 청산염을 소지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그는 독극물을 꿩을 잡는 데 사용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버지 사망 사건은 재판에서 김선자의 범행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신에서도 청산염이 검출됐지만, 김선자가 독극물을 건넸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해 해당 살인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김선자는 다른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형이 유지되면서 1989년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약 8년간 수감 생활을 이어가던 김선자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에 처해졌다. 이날 법무부는 김선자를 포함한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날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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