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제품의 공세와 생산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전기차·철강·석유화학 업계가 정부에 국내생산세액공제 적용 범위를 넓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 지원만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실제 국내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까지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26일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 주관으로 열린 ‘국내생산세액공제,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를 공제 대상에 포함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정부가 선정한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은 태양광·풍력·2차전지·반도체·핵심소재·인공지능(AI) 로봇 부품 등 6개 분야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판매 비중은 2022년 4.7%에서 올해 38.1%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국산 전기차 비중은 75.0%에서 55.0%로 낮아졌다. 중국산의 가격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국내 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김주홍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관세 장벽뿐만 아니라 자국 생산 우대 조치까지 더해 중국산 공세를 이중으로 막고 있다”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에도 생산세액공제 도입을 통해 원가 절감 실탄이 주어져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용 생태계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입 전기차에도 구매보조금이 지급되는 만큼 국내 생산을 직접 지원하는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철강 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에 국내 생산비용 상승까지 겹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철강 수입의 62%가 중국산이었다. 저가 수입재가 유입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가격 경쟁 부담이 커진 가운데 에너지 비용도 급등했다. 2022년 1분기 ㎾h당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4년 4분기 185.5원으로 75.8% 올랐다.
이재진 한국철강협회 실장은 “철강산업은 국내 수요 부진, 무역규제 심화, 저가 수입재 유입, 에너지 비용 증가 등 복합 위기에 처한 가운데 저탄소 전환이라는 도전적 과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철강 업계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수십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한 만큼 국내 생산을 뒷받침할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업계도 생산 단계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백신과 바이오의약품은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 대상이지만 국내생산세액공제에서는 제외돼 있다는 것이다.
여동호 LG화학 상무는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지원하더라도 실제 생산 과정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가 없다면 국내 생산능력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면서 “반도체가 경제안보의 핵심 산업이라면, 백신과 의약품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생명안보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지원 대상을 국가예방접종 백신에서 항체의약품·세포·유전자치료제·혈액제제, 필수의약품과 원료의약품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지속가능항공유(SAF)와 바이오납사 등 친환경 연료·원료의 국내 생산도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오 원료는 기존 화석 원료보다 가격이 비싼 데다 전처리와 정제 과정에서도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지원만으로는 실제 생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SAF 혼합의무화로 수요를 창출하더라도 국내 생산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수입 제품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용희 LG화학 팀장은 “SAF 혼합의무화는 SAF 수요를 만들 뿐 국내 생산 기반까지 자동으로 확보해 주지는 않는다”며 “국내 생산에 대한 지원이 없다면 필요한 물량을 수입 제품으로 충당해 국내 생산 기반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정 여건과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생산세액공제는 시설투자나 연구개발(R&D) 비용에 비해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를 보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라며 “재정 여건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성·필요성·유망성 등의 기준에 따라 관계 부처의 추천을 받고 평가를 거쳐 6개 분야를 선정했다”며 “조세소위 논의에도 여러 기준을 바탕으로 검토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