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한 산업에서 시장점유율 1위인 A사는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아 당시 검찰에 리니언시(자진신고자 제재·형벌 감면)를 신청했다. 로펌은 “리니언시 1순위를 확보해야 기소 면제 등 형벌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고 A사는 즉각 대검찰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국 A사는 형벌 감면 신청 1순위로 인정받은 반면 후발 사업자인 B사는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사 관계자는 “회사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설령 담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후발주자가 이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겠느냐”며 “리니언시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년간 법적 위험을 떠안게 된 셈”이라고 토로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소청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까지 담합 사건에 대한 리니언시 제도 운영을 추진하면서 기업 간 형벌 감면 신청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담합을 주도했는지보다 자진신고 순위에 따라 형사처벌 여부가 갈릴 수 있는 만큼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가 리니언시 혜택을 받은 반면 후발 사업자는 담합 혐의로 법적 다툼을 벌이다 무죄 판단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담합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SK에너지는 행정 리니언시를 통해 약 1600억 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반면 경쟁 사업자인 HD현대오일뱅크는 담합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았지만 2014년 대법원에서 부당한 공동행위에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선순위 자진신고 사업자는 제재를 면한 반면 다른 사업자는 장기간 법적 분쟁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리니언시 선순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업은 무죄를 주장하더라도 수년간 법적 불확실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수사기관마다 경쟁적으로 리니언시 제도를 확대하면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특히 중수청의 반독점 수사 조직 규모가 기존 검찰의 담합 수사 조직보다 7배가량 커지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검찰이 담합 수사를 강화하면서 기업들의 형벌 감면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다양한 업종에서 수억 원부터 수백억 원 규모의 사건에 대한 자진신고가 몰리고 있다”며 “기존 검찰 조직만으로는 모두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수청 내부에서도 반독점 수사는 상대적으로 조기에 수사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반부패·금융범죄 수사는 혐의 입증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독점 수사는 리니언시를 통해 확보한 자료와 진술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수사 실적을 둘러싼 기관 간 경쟁이 기업들의 자진신고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소청과 중수청 간 리니언시 운영 기준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양 기관은 현재 신청 접수와 순위 결정, 형벌 감면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 등 구체적인 운영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 기관별 판단이 달라질 경우 기업들은 어느 기관에 먼저 신고해야 하는지조차 예측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공소청은 최근 예규를 개정해 1순위 신청 기업에 대한 조건부 기소유예와 임직원 비협조 시 예외 규정을 도입했다. 2순위 신청 기업의 형벌 감경 기준도 기존 일률적인 50%에서 수사 협조 정도에 따라 3분의 1 이상, 3분의 2 이하 범위에서 차등 적용하도록 개선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공소청·중수청 사이 리니언시 교통 정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