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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옮긴다더니 강제 매도?”…퇴직연금 실물이전의 함정

25.10.2026 1분 읽기

퇴직연금 금융회사를 바꾸면 보유 상품도 모두 그대로 따라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품은 매도가 불가피하다. 정기예금은 중도해지 이율이 적용되고 펀드는 손실이 난 시점에 환매될 수 있다.

주현지(사진) 우리은행 연금사업부 매니저는 “이전할 수 없는 상품은 매도한 뒤 현금으로 옮겨야 하고 해외주식형 펀드나 타깃데이트펀드(TDF)는 환매에 최대 14영업일이 걸릴 수 있다”며 “가장 오래 걸리는 상품의 환매가 끝나야 적립금이 지급되는 만큼 이전 전에 보유 상품과 소요 기간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일한 제도끼리만 이전 가능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작된 2024년 10월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이전된 자금은 15조 9000억 원, 건수는 25만여 건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6조 9000억 원이 이동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를 넘었다.

실물이전은 보유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퇴직연금 사업자만 변경하는 제도다. 상품을 현금화한 뒤 다시 매수해야 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정기예금 중도해지나 펀드 환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같은 퇴직연금 제도끼리만 실물이전할 수 있다. 확정급여(DB)형은 다른 금융회사의 DB형으로, 확정기여(DC)형은 DC형으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IRP로 옮기는 방식이다. DC형과 IRP는 적립금 전부를 이전해야 하며 일부 금액만 떼어 옮길 수 없다.

DC형 가입자는 회사가 퇴직연금 규약을 통해 선정한 사업자 사이에서만 이전할 수 있다. 개인이 원하는 금융회사에 DC형 계좌가 있다고 해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 매니저는 “DC형은 회사가 계약한 금융회사 안에서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회사 퇴직연금 담당 부서에 변경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근로자가 금융회사나 제도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DC형 적립금을 다른 금융회사의 IRP로도 실물이전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퇴직하면서 기존 직장의 DC형 적립금을 타사 IRP로 받으려면 보유 상품을 현금화해야 한다. 새 직장이 DB형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기존 상품을 해당 제도로 가져갈 수 없다. DB형은 회사가 적립금과 운용 책임을 부담해 근로자가 전 직장에서 운용하던 상품을 넘겨받는 개인 계좌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폴트옵션·미취급 상품은 매도

보유 상품이 실물이전 대상이더라도 옮겨갈 금융회사가 해당 상품을 취급해야 한다. 같은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라도 새 금융회사의 상품 목록에 없다면 그대로 옮길 수 없다.

대표적인 이전 제외 대상은 디폴트옵션 상품이다. 디폴트옵션은 금융회사마다 자체적으로 구성한 상품이어서 다른 사업자로 이전할 때 그대로 승계되지 않는다. 기존 금융회사의 자체 원리금보장상품과 환매가 중단된 펀드 등도 실물이전이 제한될 수 있다.

저축은행 정기예금은 예금자보호 한도도 따져야 한다. 새 퇴직연금 계좌에서 이미 같은 저축은행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전 후 합산 금액이 보호 한도를 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한도를 초과하면 해당 상품의 실물이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가능한 상품과 불가능한 상품이 섞여 있다고 해서 계좌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상품은 그대로 옮기고 나머지만 매도해 현금으로 이전한다. 다만 DC형과 IRP는 적립금 전부를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이 불가능한 상품만 기존 계좌에 남겨둘 수는 없다.

주 매니저는 “실물이전을 신청했지만 적립금 대부분이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돼 중도해지가 필요했던 사례가 있었다”며 “이전이 가능한 상품은 그대로 옮기고 불가능한 상품만 현금화할 수 있지만 고객이 조건을 확인한 뒤 이전 신청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환매 길면 최대 14영업일 ‘투자 공백’

현금화가 필요한 상품이 있으면 이전 완료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진다. 정기예금은 통상 매도 신청 후 1영업일, 일반 펀드는 2영업일가량 소요된다. 해외주식형 펀드나 TDF는 환매에 최대 14영업일이 걸릴 수 있다.

여러 상품을 보유했다면 환매 기간이 가장 긴 상품의 매도가 끝나야 적립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현금성 자산이 부족해 이전 수수료 마련을 위한 추가 매도가 필요하면 송금 시점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국내 펀드와 해외주식형 펀드를 함께 보유했다면 국내 펀드 환매가 먼저 끝나더라도 해외 펀드의 환매대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새 금융회사에서 상품을 다시 선택해 매수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2주 이상 투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기간 시장이 오르면 상승분을 얻지 못하고 하락한 시점에 환매가격이 결정되면 평가손실이 실제 손실로 확정된다. 정기예금도 만기 전에 매도하면 약정금리보다 낮은 중도해지 이율이 적용될 수 있다.

주 매니저는 “상품 매도와 적립금 송금에 걸리는 기간은 금융회사와 보유 상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이전으로 절감할 수 있는 수수료와 매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이나 기회비용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옮기기 전 ‘사전조회’부터

퇴직연금 사업자를 고를 때는 단기 수익률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장기 수익률과 수수료, 상품 구성은 물론 상담·관리 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편의성도 살펴봐야 한다.

같은 이름의 상품을 새 금융회사에서 다시 매수하더라도 상품 클래스와 보수, 적용 금리가 기존과 다를 수 있다. 정기예금을 해지한 뒤 다시 가입하면 과거에 적용받던 금리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5년 7월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사전조회 서비스를 이용하면 별도 계좌를 먼저 만들지 않고도 보유 상품을 어느 금융회사로 옮길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신청 후에는 기존 금융회사의 최종 의사 확인 절차를 거쳐야 실제 이전이 이뤄진다.

주 매니저는 “퇴직연금은 20~30년 이상 운용하는 장기 자산이어서 단기 수익률만 보고 사업자를 자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품별 이전 가능 여부와 중도해지 불이익을 확인하고 수익률뿐 아니라 상품 구성과 수수료, 관리 서비스까지 비교해 이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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