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디스플레이, 콘텐츠 등 여러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개별 산업의 눈부신 성취가 곧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첨단 산업을 뒷받침할 전력과 인재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세계적인 제조 역량을 갖췄음에도 부품과 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를 수익으로 연결할 핵심 지식재산(IP)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이 산업으로 성장하고, 산업의 성과가 지속적인 국가적 우위로 연결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신간 ‘초격차 선도국가의 조건’은 바로 이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전상훈 이지스커뮤니케이션 대표가 함께 쓴 책은 우리나라가 다음 시대를 설계하는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살핀다. 기술과 산업의 경쟁력을 개별 분야의 성과로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와 인프라, 금융과 재정, 외교와 문화, 정책 실행력을 하나의 국가 역량으로 연결하는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가능성과 과제를 분석한다.
책은 국가의 역량을 ‘두뇌’ ‘몸’ ‘신경계’ ‘표정과 목소리’ ‘순환계’라는 다섯 영역으로 나눠 살핀다. 먼저 첨단 산업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계산 체계와 기술 경쟁력의 조건을 짚는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AI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전력 문제를 함께 다루며 기술적 우위가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모색한다.
조선·방산·전자·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제조업은 지식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몸’이다. 제조업을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 숙련과 개선이 맞물리며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는 기반으로 바라본다.
로봇과 자율 제조, 자율이동체, 방산 무인 체계는 디지털의 판단을 물리적 행동으로 바꾸는 ‘신경계’다. 피지컬 AI를 통해 AI의 판단이 산업 현장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피고, 현장에서 작동한 기술이 다시 학습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제시한다.
K컬처와 관광·뷰티·라이프스타일은 세계와 감정과 신뢰를 주고받는 ‘표정과 목소리’다. 문화적 인기가 국가에 대한 신뢰와 영향력으로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 아래 창작의 자유와 국가 브랜드, 문화 외교의 역할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순환계’는 국가가 전략을 예산으로, 예산을 집행으로, 집행을 성과와 학습으로 연결하는 체계다. 예산과 권한이 현장에 제대로 전달되는지, 정책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 그 결과가 다음 정책과 자원 배분에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짚는다.
저자들은 이들 다섯 영역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서로 연결돼 하나의 경쟁력을 형성한다고 강조한다. AI와 반도체의 기술적 성취는 제조업의 생산으로 구현되고, 현장의 경험은 다시 기술과 공정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K컬처가 불러온 세계의 관심은 신뢰와 협력으로 발전해야 하며, 재정과 행정은 국가 전략을 실질적인 성과로 전환해야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성과만으로는 선도국가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씨콤, 34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