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사였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 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1970~1980년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강한 추진력으로 개혁 정책을 뒷받침했다.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나란히 ‘좌동영 우형우’로 불리며 YS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고(故) 최 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 대표를 맡았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울산·울주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9·10·13·14·15대 의원을 지내 6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초선 시절에는 대정부 질의에서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통해 영구 집권하려 했다는 구상을 폭로했다가 국군보안사령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3개월 동안 고문을 당했다. 1980년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뒤 의원직을 상실했다.
고인은 1984년 정치활동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뒤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다.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원내총무 등을 거치며 야권의 주요 인사로 자리 잡았다.
1990년 3당 합당 때에는 민주자유당에 합류해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YS 당선 이후에는 민자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의 차기 대권주자군인 ‘9룡’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일 씨와 아들 최석균·최제완 씨, 딸 최은지·최은실 씨 등 2남 2녀가 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에 따르면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공동장례위원장에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YS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빈소를 찾을 예정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