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할까. 물질들이 모여 어떻게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신간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 그 답을 찾는다. 전자와 분자에서 출발해 단백질과 DNA, 세포와 미토콘드리아를 거쳐 암과 노화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추적한다.
저자인 박문호 박사는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30년간 반도체 관련 연구를 했다. 전자공학자이면서 오랫동안 뇌과학과 생명과학을 탐구해 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뇌, 생각의 출현’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을 펴냈다.
생명을 이해하는 핵심 단위는 세포다. 우리 몸은 피부 세포, 신경 세포 등 약 200가지의 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세포 안에서는 수많은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분해된다. 단백질은 세포의 구조를 유지하고 화학반응을 촉진하며 물질을 운반하는 등 생명활동의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토록 다양한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재료가 20종의 아미노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마치 20개의 구슬을 서로 다른 순서와 길이로 꿰어 무수한 목걸이를 만들듯 생명체는 아미노산을 조합해 각기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현재까지 실험을 통해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은 16만 개에 이르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폴드’는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생명의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그러나 단백질과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생명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화학반응과 에너지의 흐름이야말로 생명활동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세포는 포도당을 분해하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며 손상된 부분을 복구한다. 이러한 과정이 멈추지 않고 이어져야 생명도 유지된다. 저자가 “살아 있음은 연주이지 악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생명체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존재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생존을 위협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이다.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은 무질서와 붕괴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복잡한 생화학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202개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수많은 분자와 대사과정을 하나의 지도처럼 연결해 보여주려는 정성스러운 시도다. 다양한 비유를 동원해 어려운 개념을 풀어내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다만 이렇듯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만한 입문서는 아니다. 물리학과 화학, 분자생물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기초지식과 끈기가 필요하다. 4만 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