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병원에 축적된 의료 데이터를 신약 개발과 의료 인공지능(AI) 연구에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의약품 허가 이전에 생산한 제품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제네릭 의약품 심사 기준도 합리화한다. 연구개발(R&D)부터 생산·판매까지 바이오 산업 전반의 규제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23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2차 규제합리화위원회를 열고 ‘바이오 분야 경쟁국 수준 규제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복지부는 안전하게 가명 처리된 의료 정보를 활용하는 연구를 ‘인간 대상 연구’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현재는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더라도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에 심의 면제를 신청하고 확인받아야 하지만 앞으로는 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다만 인체 유래물을 활용하거나 환자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연구는 기존 심의를 유지한다.
기존 연구에서 수집한 의료 데이터를 다른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포괄동의제도도 도입한다. 연구대상자의 거부권 보장을 전제로 재동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의료기관마다 다른 가명 처리 기준을 통일하고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클라우드 환경에서 데이터를 원격 분석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도 마련한다.
식약처는 의약품 생산·허가 규제를 손질한다. 지금까지는 품목 허가 이전에 제조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준수하고 최종 허가 사항과 동일하게 제조하는 등 요건을 충족하면 판매를 허용한다.
제네릭 의약품 심사도 개선한다. 수용성 주사제처럼 동등성이 명확한 제품은 입증 자료 제출을 면제하고 안연고제는 제품 특성을 반영한 대체 시험을 허용한다. 첨단 재생의료 분야에서는 자가면역 세포 치료의 위험도를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낮추고 외부 보관 제대혈 및 배아 줄기세포 활용을 확대한다.
관건은 시행 속도다. 복지부에 따르면 첨단 재생의료 심의 체계 개선을 위한 법률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의료 데이터 2차 활용을 위한 생명윤리법 개정안 역시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 완화 방안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본다”면서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하려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고 후속 제도 개선이 빠르게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