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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국가 경제의 동맥

21.10.2026 1분 읽기

이틀 전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상혁 신한은행장에게 “3연임에 도전하실 겁니까”라고 물었다. 국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장에서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한술 더 떴다. 그는 5대 은행장을 겨냥해 “고객 정보조차 지키지 못한 행장은 연임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인공지능(AI)발 해킹에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돈을 다루는 은행은 신뢰가 생명이다. 정보통신(IT) 기업이나 통신사의 보안 실패와는 차원이 다르다. 16개 금융사에서 10만 건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은행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지 않나.

실제 국내 은행의 보안 예산과 인력은 미국 대형 은행의 37분의 1, 47분의 1에 불과하다. 자산 규모는 10배 차이 나지만 격차는 더 크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투자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린다. 국내 은행의 특성상 IT와 정보 보호보다 영업과 전략이 우대받는다.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AI 해킹 사태에서 한국 금융의 고질병인 ‘관치’와 ‘순응’이 엿보인다. 해킹을 걱정한 정부는 은행권에 망 분리를 도입해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했다. 비행기를 안 타면 비행기 사고 가능성이 제로가 되는 것과 같다. 정보 유출 위험은 없어졌지만 대응 능력은 후퇴하고 기술 발전의 기회는 사라졌다.

미국은 다르다. 망 분리를 강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끝없이 외부 공격을 받지만 그만큼 투자를 늘려왔다. 국내 은행도 뒤늦게 예산 배정을 늘리고 AI 보안에 투자할 예정이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당국의 역할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살펴 그에 걸맞은 제재와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은행장을 불러 모아 망신 주듯 “연임하겠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명분도 실효성도 없다. CEO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우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관치의 부작용은 더 커진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많은 국민이 손실을 입었지만 이를 책임진 당국자가 있나.

걱정스러운 것은 이재명 정부 들어 정치권과 당국이 은행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엄연히 주주와 이사회가 있는데도 노골적으로 인사에 끼어든다. 금융지주를 빗대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하거나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연체 채권을) 정부 차원에서 매입” 같은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이 정부에서 금융권의 자리는 사실상 없는 듯하다.

은행은 금융 산업의 근간이자 국가 경제의 동맥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은행이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휘청인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조·상·제·한·서’ 5대 은행이 사라졌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라는 숫자가 은행의 생사를 갈랐다. 은행이 부실하니 신규 대출은커녕 기존 여신을 회수하기 바빴다. 그렇게 사라진 기업들이 차고 넘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도 그랬다. 지금의 4대 은행 가운데 한 곳이 외화채 부도 위기를 맞았다. 정부가 나서 지급보증을 서겠다고 밝힌 뒤에야 겨우 잠잠해졌다. 그때 외화채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선언됐다면 한국은 ‘제2의 IMF’ 비극을 겪었을지 모른다.

은행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게 은행이라지만 은행이 무너지면 경제도 붕괴된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이 꺼지면서 은행과 지방은행·증권사 등 330여 개 금융사가 퇴출됐다. ‘잃어버린 30년’의 서막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부동산 폭락론도 같은 악몽이 될 수 있다.

은행 없이는 첨단산업 지원도, 제조업 강국도 공염불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안보·회복력 이니셔티브’ 출범 후 첫 1년 동안 2300억 달러(약 306조 원)를 지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금융권 도움 없이 홀로 싸우기 힘들다. 금융 산업 육성이 어렵다면 차라리 은행을 놔뒀으면 좋겠다. 세무조사와 각종 금감원 검사는 은행업을 더 후퇴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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