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 부담을 덜겠다며 건강보험료를 잇따라 동결하면서 향후 보험료 폭증을 부르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4년간 세 차례에 걸친 보험료율 동결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면 2028년부터는 매년 2% 이상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건강보험료율은 2024년과 2025년 7.09%로 2년 연속 동결된 뒤 올해 7.19%로 1.48% 인상됐다. 하지만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지난달 8일 2027년도 보험료율을 다시 7.19%로 동결하면서 최근 4년 가운데 세 차례 보험료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됐다.
반면 건보공단은 ‘2026~2030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2027년부터 2030년까지 보험료율이 매년 1.49%씩 오르는 것을 전제로 수입을 추계했다. 내년도 보험료율이 동결되면서 그만큼 향후 보험료율 인상 부담이 뒤로 밀린 셈이다.
정부가 내년도 보험료율을 다시 동결한 것은 현재까지 쌓인 준비금과 경기 회복에 따른 보험료 수입 증가 가능성을 감안한 결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건강보험 준비금은 30조 2000억 원으로 약 3.5개월 치 급여비에 해당한다. 정부는 최근 5년간 당기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데다 내년도 정부 지원금이 약 1조 1000억 원 증가하고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추가 보험료 수입도 약 3조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동결 근거로 제시했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정부는 약가제도 개선을 통해 연간 약 2700억 원, 검체·영상 수가 조정으로 약 2조 6000억 원, 부당 청구 관리 강화로 약 8000억 원을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건보공단 역시 2030년까지 5년간 총 16조 4565억 원 규모의 자구 노력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을 감안하더라도 보험료율 인상을 뒤로 미룰수록 향후 필요한 인상 폭이 커진다는 점이다. 건보공단 안팎에서는 2030년 법정 비상준비금인 급여비 1.5개월분을 유지하려면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보험료율을 매년 2% 이상 올려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초 건보공단이 중장기 재무계획에서 가정한 연 1.49% 인상보다 높은 수준이다.
보험료율 추가 인상 여력도 넉넉하지 않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가입자 보험료율 상한은 8%다. 현재 보험료율 7.19%와의 차이는 0.81%포인트에 불과하다. 2028년부터 보험료율을 매년 2%씩 인상한다고 단순 계산하면 2032년 7.94%까지 오르고 2033년에는 8%를 넘어서게 된다. 실제 정기석 전 건보공단 이사장은 올해 5월 수가협상 간담회에서 “보험료율이 7.19%로 법정 상한 8%에 임박해 추가적인 수입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건보공단은 현 단계에서 보험료율 상한 자체를 높이는 방안에는 선을 긋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으로 보험료 수입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강청희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보험료율 상한 조정과 관련해 “현 단계에서는 보험료율 상한을 넘기는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대신 보험료 부과 체계를 보다 정교하게 손보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정을 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