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투자 파트너로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잇따라 낙점하고 있다. LG CNS는 미국 제너럴애틀랜틱과 기업용 소프트웨어·AI 기업에 함께 투자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삼성 계열사들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세운 헬릭스디지털인프라에 총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SDS는 올해 KKR로부터 1조 200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 투자를 받으며 파트너십을 맺었다.
대기업의 조 단위 AI 빅딜에서 토종 PEF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국내 컨소시엄이 참여한 SK호라이즌 3조 800억 원 투자유치에서도 더 많은 돈을 낸 곳은 KKR이었다.
국내 PEF가 대기업과 자주 하는 거래는 카브아웃(사업부 분할 매각)이나 계열사 매각이다. 그룹이 비핵심을 떼어 팔면 PEF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거래도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미래 핵심 사업에 파트너로서 동행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재계에서는 글로벌 PEF와 거래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투자 이력과 자금력은 물론 협상장에서 내놓는 선택지도 더 많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글로벌 운용사는 초장기 펀드가 있어 재무적투자자의 엑시트 부담이 덜하다”며 “요구 수익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세계 각국 네트워크까지 갖춘 글로벌 PEF가 사업 운영 측면에서도 더 낫다”고 밝혔다.
국내 PEF 업계에서는 대기업 AI 파트너 자리에서 우선순위가 밀렸다는 위기감이 포착된다. 대형 운용사 내부에서조차 펀드가 작으니 투자 제안조차 오지 않는 것 아니겠냐는 자조가 나온다. AI 인프라 특성상 투자 시점이 늦춰질수록 후발 투자자는 더 불리한 조건을 감내해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토종 PEF가 글로벌의 업력과 자금력·네트워크를 단기간에 뛰어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자본시장에서 애국심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토종 PEF가 ‘에지’를 가질 수 있는 영역도 존재한다. AI 우량 투자처를 먼저 발굴하고 기업에 제안하는 역량이다. 카브아웃 등으로 그룹사와 오래 호흡을 맞춰 온 만큼 이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를 무기로 대기업과 공동투자하는 것이 국내 운용사의 AI 시대 생존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