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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 약해지는 65세…독감 백신 선택도 달라져야

17.10.2026 1분 읽기

“독감 유행이 점점 빨라지나봐.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손주는 벌써 독감에 걸렸다더라고. 나도 올해는 일찌감치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겠어. ”

오랜만에 동네 노인정을 찾은 김모(69) 씨는 또래 지인과 독감(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이야기를 나누다 고민에 빠졌다. 예년처럼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무료 예방접종을 맞을 생각이었는데, 지인을 통해 별도 비용을 내고 ‘노인에 특화된 독감 백신’을 맞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일반 백신에 대한 면역반응이 떨어질 수 있어, 예방 효과를 높인 백신이 개발됐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비용을 더 내고 맞을 만큼 효과 차이가 큰지는 알기 어려웠다.

독감은 얼핏 감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환이다. 감기는 라이노·아데노바이러스 등 여러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상기도 감염으로 콧물과 코막힘, 기침, 인후통, 가벼운 발열 등이 주증상으로 나타난다. 반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근육통, 심한 피로감 등 전신 증상이 두드러진다. 폐렴을 비롯한 이차 합병증과 입원 위험이 감기보다 높고, 백신과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것도 다르다.

독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하고 유행하는 균주도 달라질 수 있어, 매년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지의 감시 자료를 토대로 매년 남·북반구에서 다음 절기에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의 종류를 예측해 공개한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자와 임신부, 생후 6개월~14세 영유아 및 어린이를 독감 고위험군으로 보고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을 통해 매년 표준 백신의 접종비를 지원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배양할 때 닭의 수정란을 활용하는지, 유정란이 아닌 동물세포를 활용하는지,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지 등 제품 특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NIP에 포함된 표준 백신 간에는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효과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전 세계 백신 제조사가 WHO로부터 그해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된 바이러스를 받아 배양·생산하는 데다 함량 기준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두 종류와 B형 한 종류를 예방하는 3가 독감 백신이 NIP에 포함돼 이달 21일 어린이와 임신부부터 순차적으로 접종이 시행된다. 고령자는 11월 12일부터 연령별 스케줄에 따라 국가가 지원하는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그런데 고령층 등 면역저하자를 겨냥한 고면역원성 독감 백신이 잇따라 도입되면서 김 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고령층이 독감에 취약한 배경에는 ‘면역 노화(Immunosenescence)’가 자리하고 있다. 면역 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면역계의 기능이 쇠퇴하고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과정이다. 흉선과 골수의 퇴화로 면역세포의 생성과 활성도가 떨어지고,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독감에 걸렸을 때 고열, 심한 근육통 같은 전형적인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것도 면역 노화와 관련이 깊다. 고열 대신 식욕이 줄거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평소보다 처지는 정도로 나타나니 진료가 늦어지게 마련이다. 백신을 맞은 뒤 항체를 만들어내는 반응도 젊을 때만큼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김정호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면역 노화는 연속적으로 진행되지만 일반적으로 50세 이후부터 감염병 위험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65세가 넘으면 독감에 취약한데 면역 노화로 인해 백신의 예방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젊은 층보다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당뇨병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 질환을 함께 앓으면 위험 부담이 더욱 커진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이 독감 관련 입원 환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고면역원성 독감백신을 우선 접종하도록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면역원성 백신은 표준용량 백신보다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독감백신을 통칭한다. 항원량을 늘린 고용량 백신과 면역증강제를 첨가한 면역증강 백신,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항원을 생산한 재조합 백신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바이러스주별 항원량을 표준백신의 4배로 늘린 고용량 백신과 면역증강제를 넣어 면역세포가 항원을 더욱 효과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면역증강 백신이 도입됐다. 김 교수는 “표준 백신이 항원을 통해 항체 형성을 유도한다면 면역증강 백신은 MF59와 같은 면역증강제를 더해 항체반응을 키우도록 설계됐다”며 “면역 노화로 인해 약해진 방어력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65세 이상이라도 백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이득은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만성질환을 앓는 초고령자와 요양시설 입소자, 항암치료 중인 암환자, 장기·조혈모세포 이식 환자, 면역조절제 사용 환자는 건강한 60대보다 독감에 걸렸을 때 중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커 고면역원성 백신을 우선 고려할 만하다. 다만 국가 지원 대상이 아니라 접종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접근성을 낮추는 장벽으로 꼽힌다.

독감 백신은 종류와 관계 없이 접종 후 보호항체가 형성되는 데 약 2주가 걸린다. 어떤 백신을 맞을지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적절한 시기에 접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10월 안에 접종을 마치는 것이 좋지만, 시기를 놓쳤다면 늦게라도 맞는 편이 낫다. 김 교수는 “백신을 맞고도 독감에 걸릴 수 있지만 폐렴, 입원 등 중증화 위험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65세 이상 고령자, 특히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유행 전에 예방접종을 마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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