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시 만날 이유를 남겨야 할 때, 오랜 선배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관계의 방향을 가르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때마다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뜻을 전할 적절한 표현부터 고민한다.
그러나 오용석 작가의 신간 ‘다가설 때와 멈출 때’는 말의 기술보다 앞서야 할 것은 판단이라고 강조한다. 지금 다가가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까워져도 되는지, 상대의 기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이 시작한 일에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판단이 서지 않으면 아무리 세련된 말도 관계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사 업무를 시작으로 대관, 영업, 해외 법인 운영까지 30년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왔다. 말 한마디가 조직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국정감사장, 신뢰를 처음부터 쌓아야 했던 낯선 시장, 오랜 인연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로 돌아온 순간까지. 책에 담긴 서른여섯 개의 장면은 저자가 직접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했던 경험에서 나왔다.
성공적인 선택만 골라 처세의 비결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도 책의 특징이다. 상대를 실망시키기 싫어 답을 미뤘던 일, 상대의 마음을 안다고 자신한 나머지 제 방식대로 해석했던 일도 솔직하게 담았다. 각 장에는 당시의 판단과 시간이 흐른 뒤의 성찰이 함께 담겨 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의 해석으로 당시의 불확실성을 덮지 않고, 지금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던 순간까지 보여준다.
책은 관계의 흐름에 따라 ‘다가설 때’ ‘나눌 때’ ‘멈출 때’ ‘다시 읽을 때’ ‘책임질 때’ 등 다섯 부로 구성된다. 첫 만남에서 무엇을 남기고, 관계를 어떻게 넓히며 어디서 선을 그을지, 어긋난 관계에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이 맡은 몫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차례로 살핀다.
저자가 제시하는 관계의 문법은 상대를 뜻대로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돌아보게 하는 기준이다. 관계를 오래 지키려면 언제 다가가고 어디서 멈추며 무엇을 책임져야 할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추천의 글’에서 “저자는 상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정당한 거리’를 측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법을 이야기한다”며 “자신의 미숙했던 순간과 아쉬웠던 경험을 솔직하게 복기하며 던지는 나지막한 질문들은 독자 스스로의 삶과 처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파지트, 27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