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불복 논란과 2021년 1월 발생한 의사당 난입 사태는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낙태권과 이민, 총기 규제, 젠더 문제 등 사회 현안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의 분열 양상은 한층 심화하고 있다. 2024년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성인 4명 중 한 명은 자신이 사는 주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북미 지역주의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정당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와 분열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헛수고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 강령, 지역별 지지 기반은 1960년대 이후 정반대로 바뀌었다. 1916년만 해도 공화당이 공동체주의와 시민권을 옹호한 반면, 민주당은 백인우월주의와 인종 분리 정책을 지지했다.
저자가 양극화된 미국 정치와 이념 전쟁의 원인으로 꼽는 것은 ‘지역 문화’다. 그는 미국이 애초부터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국가였던 적은 없으며,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러 개의 미국이 공존해 왔다고 말한다. 북미 식민지 초기 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정착민들이 각자의 제도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지역 문화를 형성했고, 그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을 양키덤, 뉴네덜란드, 미들랜드, 타이드워터,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딥사우스, 엘 노르테, 레프트코스트, 파웨스트 등 9개 지역 문화권으로 구분한다. 이어 각 문화권이 개인과 집단,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적극적·소극적 개인주의와 적극적·소극적 공동체주의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다시 분류한다.
저자는 역사학·정치학·사회학 등의 연구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 문화가 오늘날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총기 사망률이 대표적이다. 영국인 노예주들이 정착한 딥사우스는 인구 10만 명당 총기 사망자가 15.6명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만 연안에 세운 양키덤은 8.6명으로 뉴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저자는 딥사우스에서 모욕을 당하고도 대응하지 않으면 명예가 훼손된다고 여기는 ‘명예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은 점에 주목한다. 반면 청교도들은 자기 성찰과 자제력을 중시했고, 신이 복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역 문화는 미국인들의 건강과 기대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대수명을 비롯한 각종 건강 지표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보인 곳은 적극적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딥사우스와 그레이터 애팔래치아였다. 18세기 초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 전쟁을 피해 정착한 그레이터 애팔래치아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렸다. 저자는 이들 지역의 역대 엘리트들이 낮은 세금과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려 수 세기에 걸쳐 보건·의료·위생 등 공공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지역 문화에 기반한 가치관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그레이터 애팔래치아에서 25%포인트, 딥사우스에서 9%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이들 지역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복음주의 교단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저자는 미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려면 지나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연대와 공동 번영을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총기 폭력에서 기대수명까지, 빈곤 예방과 사회적 회복 탄력성에서 기후변화와 당뇨병 예방까지, 권위주의자와 파시스트로부터 공화국을 지키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국민들은 지난 250년간 형편없는 성과를 내며 미국이라는 실험을 파괴할 조건을 반복적으로 조성해 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자유를 숭배하는 문화가 우리를 전제정의 위기로 몰고 갔다”고 지적한다.
448쪽, 2만 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