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8차례 신고한 60대 여성이 별거 중인 남편에게 살해됐다. 경찰은 피해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었지만 사건 당일 모니터링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는데도 추가 안전 확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위험군 피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후속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매뉴얼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자 보호체계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60대 여성 A 씨는 전날 오후 5시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가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자 집을 찾은 지인이 현관 쪽에서 혈흔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별거 중인 남편 B 씨가 이달 13일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사이 A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는 올해 4월부터 남편의 위협을 호소하며 경찰에 7차례 신고했다. 지난달에는 B 씨로부터 수십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아 두렵다며 추가로 신고했다. 경찰은 B 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A 씨를 고위험 사건 피해자로 분류해 모니터링해왔다.
그러나 경찰의 피해자 보호 조치는 실제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인 13일 오후 5시 43분께 A 씨에게 모니터링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 시간은 경찰이 추정한 범행 시간대와 겹친다. 그럼에도 경찰은 추가로 연락을 시도하거나 주거지를 방문해 안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A 씨가 숨진 사실은 약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파악됐다.
경찰청 차원에서 고위험군 피해자에 대한 모니터링은 규정하고 있지만,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등 연락이 두절됐을 때 취해야 할 후속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 시간적 간격을 두고 재차 전화 연락을 시도하거나 문자를 발송하는데, 담당자가 다음날 비번이라 이를 하지 못했다”며 “향후 전화 부재 시 매뉴얼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사전 조치가 충분했는지도 논란이다. B 씨는 스토킹 잠정조치 1~3호에 따라 서면 경고와 접근·연락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은 B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스토킹했고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없었던 점과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해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전자장치 부착 등 추가적인 조치는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충남 서천에서 B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체포 당시 음독 상태였던 B씨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계획범죄 여부와 구체적인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