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곤
논설위원
영국 화가 새뮤얼 루크 필즈의 1891년작 ‘더 닥터’에는 가난한 어부의 오두막에서 병든 아이를 밤새 지키는 의사가 등장한다. 희미한 등불이 아이의 얼굴을 비추고 창문으로 새벽빛이 스며든다. 필즈가 어린 아들을 잃었을 때 곁을 지키며 돌봐준 의사의 헌신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 근대 서양의학도 의사가 환자를 방문하는 왕진에서 시작됐다. 미국인 의료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은 1884년 갑신정변 때 개화파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민영익의 거처를 찾아가 치료했다. 왕실의 신임을 얻은 알렌은 서양식 병원 설립을 건의했고 1885년 제중원 건립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청진기와 혈압계가 든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의 집을 찾던 동네 의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낯설지 않았다. 수십 년간 벽지 등 의료 취약 지역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한 의사들의 미담도 많았다.
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뜸해졌던 왕진이 초고령사회에서 ‘방문진료’나 ‘재택의료’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방문진료가 정작 필요한 곳에 의료진의 발길이 잘 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13일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돌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곳은 59곳으로 이 중 40곳이 인구감소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의 방문진료 수요 대비 공급 충족률은 10.7%로 일반지역 25.5%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정부는 현재 463개인 재택의료센터를 2030년까지 650개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진의 이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진료 수가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함께 방문간호와 요양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왕진은 고령층은 물론이고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다. 135년 전 그림 속 의사처럼 방문진료가 환자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