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무부와 외교부·국방부까지 세종으로 대거 이전하게 되면 중앙정부의 행정체계가 사실상 세종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핵심 부처를 한곳에 모아 정책 조정과 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도권 집중도 완화하겠다는 구상인데 대통령실과 국회의 이전 일정이 엇갈리면서 서울과 세종으로 나뉜 행정체계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수사기관의 이전에 따라 기존 유관기관과의 협업체계를 재정비해야 하는 데다 정부가 앞선 세종 이전의 수도권 집중 완화 효과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13일 행정안전부의 ‘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계획’에 따르면 2027년부터 2031년까지 44개 기관, 공무원 9929명이 세종으로 이전한다. 기존 43개 기관 1만 4731명을 더하면 총 87개 기관, 2만 4660명 규모다. 2005년 행복도시법 제정 이후 경제·사회 부처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전이 외교·안보·수사 분야까지 확대되는 셈이다.
정부는 내년 민간 임차청사를 활용해 27개 기관 2995명을 먼저 옮긴다. 상반기에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국가교육위원회·재외동포청 등 6개 기관이, 하반기에는 금융위원회와 자문위원회·소속기관 등 19개 기관이 이전한다.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는 행복도시법 개정에 맞춰 일정을 확정한다.
독립청사와 특수시설이 필요한 나머지 17개 기관 6934명은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이전한다. 경찰청(2160명), 감사원(1059명), 공소청(471명), 중대범죄수사청(396명), 공수처(85명) 등 5개 기관 4171명, 외교부(1024명), 국방부(746명), 통일부(336명) 등 3개 부처 2106명, 국립외교원 등 9개 소속기관 657명이 대상이다.
전체 사업비는 약 3조 2000억 원으로 청사 건립에만 약 3조 1000억 원이 쓰인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임차청사 조성·운영과 이주 지원에 897억 원, 신청사 기본설계에 286억 원 등 1183억 원이 반영됐다. 신축 청사 완공 전까지 3~4년간 임시청사를 운영해야 해 임차료와 운영비가 계속 발생한다. 정부는 비게 되는 서울·과천청사에 수도권 특별지방행정기관 등을 입주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가 국정 운영 효율화를 내세웠지만 서울·세종 간 업무 분산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세종 집무실은 2029년, 국회 세종의사당은 2033년 준공 목표이고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의 이전 여부는 미정이다. 부처가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하거나 협의하기 위해 오가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
외교부 이전은 서울에 밀집한 주한 외국 대사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주요국 주한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외교부가 세종으로 내려간다면 대사관들도 결국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외교의 생명은 일상적인 대면 네트워크인데 주재국 외교부와 물리적으로 분리되면 긴급한 외교·안보 현안을 조율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31년까지 이어지는 사업이 정권 교체 이후 지연되거나 변경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국방·통일부와 대통령실·국가안보실이 다른 지역에 머무는 기간 긴급 현안에 대한 정보 공유와 지휘·보고체계 정비도 필요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워싱턴DC처럼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와 유관 조직을 한꺼번에 옮기는 방안은 타당성이 있다면서도 “외교부나 국방부 등 상급 부처와 그 산하기관·국책연구기관들이 서울과 세종으로 쪼개져 흩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한곳에 모여 집적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과 공소청·중수청·공수처 등의 이전은 수사·재판 관련 업무 연속성과 전문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대법원·헌법재판소 등은 서울에 남는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재판 서비스 저하를 막을 방안을 마련하고 전문인력 이탈 문제도 세부 이전계획 수립 과정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정착도 쉽지 않다.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마련한 직원들이 많아 가족 전체가 세종으로 이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성평등가족부에서도 육아·통근 부담이 제기된다. 정부는 이사비와 초기 이주지원비, 한시적 교통편 제공을 검토하고 있으나 규모와 지급 기간은 확정하지 않았다. 법무부·성평등가족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 등 5개 부처는 현행 행복도시법상 이전 제외 기관이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 내 개정을 추진하지만 입법이 지연되면 내년 이전 일정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존 이전의 성과 분석도 숙제다. 윤 장관은 수도권 집중 완화 효과에 대해 “커다란 효과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으며 정부는 행정 기능 분산의 경제적 효과를 보여줄 명확한 자료를 찾지 못해 추후 설명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세종 이전 효과를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5극 3특’ 정책까지 함께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1차 이전 당시 정책의 연속성이 부족해 성과가 기대만큼 가시화되지 못했다며 정주 인프라 확충과 지역사회·이전기관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