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 사업을 둘러싸고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사생활 침해 우려는 적절한 규제와 제도 설계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의 지급준비금 토큰화 사업에 대해서도 IMF의 정책 권고 일부와 방향을 같이한다고 평가했다.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 IMF 통화자본시장국 부국장은 8일 한국 언론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CBDC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에 대해 “매우 중요한 우려 사항”이라면서도 “현금과 달리 디지털 결제에서는 사생활 보호 문제가 발생하지만 적절한 규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이든 지급준비금 토큰화든 CBDC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은 본부 앞에는 정부가 CBDC로 국민을 감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반대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에 한은은 8일 프로젝트 한강이 일반인용 CBDC와 무관하며 고객 신원 정보는 거래 은행에만 보관된다고 해명했다. 일반인용 CBDC를 발행하거나 도입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밤바키디스 부국장은 “한국은 지급준비금 토큰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이는 일반인용 CBDC와는 다르다”며 “디지털 결제 환경에서는 신뢰가 중요한 만큼 중앙은행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이우 폰세카 페헤이라 IMF 금융감독·규제 담당 부과장도 한은의 프로젝트 한강과 아고라에 대해 “별도의 평가는 수행하지 않았다”면서도 “규제 명확성과 안전하고 확장 가능한 결제자산 확보 등 IMF가 강조하는 정책 권고 일부를 다루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핵심 금융 결제 인프라에는 중앙은행 화폐를 활용하는 것이 국제기준의 일반적인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내년 2월 4일 토큰증권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시장 확대도 추진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조각투자를 넘어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증권으로 토큰화 범위를 넓히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선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모사채, 신탁 방식의 비상장주식 등을 토큰화하고 단계적으로 공모 증권과 온체인 결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IMF는 이러한 토큰화 확산이 외환시장과 통화정책에 새로운 부담이 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밤바키디스 부국장은 “토큰화로 해외자산 투자 장벽이 낮아지면 자국 자산 선호가 약해지고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자본 이동에 따른 환율 오버슈팅은 통화정책 기조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일부 신흥국에서는 디지털화폐 확산에 따른 달러화 사용 증가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 토큰화 시장 규모가 작아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 가능성이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안정 위험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페헤이라 부과장은 “현재는 의미 있는 시스템 위험이 확인되지 않지만 담보관리 효율화로 금융기관의 레버리지가 확대되면 충격 발생 시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밤바키디스 부국장은 “토큰화는 금융거래의 효율뿐 아니라 위험도 가속한다”며 기술과 관계없이 동일한 금융위험에는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