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지 전수조사 원칙에서 사실상 후퇴한 것은 현행 농지법이 농촌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올해 5월부터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지 투기를 잡겠다며 전수조사에 착수했으나 농가에서는 “관행에 따라 농사를 지어왔을 뿐인데 국가가 땅을 빼앗아간다”는 불안심리가 급격히 확산했다. 이에 따라 농촌 땅값이 하락하고 농지 거래가 위축되는 등 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에 대해 처분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고령농 증가와 인구 감소, 상속에 따른 소유권 분산 등으로 법에 맞지 않는 농지 이용 형태가 오랜 기간 누적돼왔다. 이런 농지들이 이번 전수조사에서 모두 확인돼 처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에 당정은 지난달 불법 농지를 농지은행에 위탁할 경우 처분을 유예해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 사이에서 “유예기간이 끝나면 결국 농지를 처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이보다도 한발 더 물러서 투기 목적이 아닌 농지는 농지은행 위탁 여부와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처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상속받은 농지나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맡긴 농지, 종중·사찰 소유처럼 주인이 복잡한 농지가 대표적이다. 길이 없거나 경사가 심해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지도 처분 대상에서 제외한다. 농업용 창고 등 농지에 적법하게 설치할 수 있었지만 허가를 받지 못한 시설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신 2~3년의 정비 기간을 두고 그동안 위법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구두로 농지를 빌려주던 관행 임대차는 땅 주인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서면으로 계약하면 합법적인 임대차로 인정한다. 허가를 받지 않은 농업 시설도 법적으로 설치할 수 있었던 시설이라면 사후에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농지인데 실제로는 다른 용도로 사용돼 지목과 실제 이용 상태가 다른 경우에는 지목을 현실에 맞게 바로잡는 절차도 마련한다.
다만 명백한 투기 행위로 판단되는 농지는 충분한 소명 절차를 부여한 뒤 현행 농지법에 따라 처분명령을 부과할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약 15만 ㏊)에서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거나 임대하는 경우, 경매 등으로 농지 지분을 취득한 뒤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임대하는 경우, 농업 법인을 통해 농지를 쪼개 팔거나 임대해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경우 등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런 사례는 개발 수요가 높은 지역에 집중돼 있으므로 대부분 농촌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이미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농지 전수조사를 위해 추경 등 예산 총 1100억 원을 투입하고 5000명 규모의 조사 인력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실제 올해 7월 말까지 기본 조사에만 이미 공무원 5313명과 민간 조사원 2964명 등 8277명이 투입됐다.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 136만 ㏊를 대상으로 소유·경작·이용 실태를 샅샅이 들여다본 뒤, 불법 의심 농지를 다시 현장 확인하는 방식이다. 막대한 행정력이 동원된 것에 비해 처분 대상이 급격히 좁아지면서 당초 투기성 농지 취득을 뿌리 뽑겠다는 목표가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지 조사에 투입된 중국산 항공 무인기(드론)의 촬영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송 장관은 “0.1%의 우려라도 있을 수 있어 일단 중국산 드론 촬영은 일시 중단시켰다”며 “보안 조치를 철저히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