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삼성월렛에 스테이블코인을 담는 것은 단순히 가상화폐 기능 하나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세계 1억 명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지갑을 송금과 결제, 각종 금융 서비스를 아우르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국제송금을 시작으로 향후 온라인·오프라인 결제는 물론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간 거래와 다양한 금융 서비스까지 삼성월렛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채원철 삼성전자 삼성월렛 총괄 부사장은 8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토큰 2049’에서 “삼성월렛은 신용·체크카드와 신분증, 자동차 키까지 이미 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월렛의 기능인 ‘돈을 보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며 “삼성월렛의 글로벌 도달 범위와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없는 특성을 결합해 이 기술이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활용처를 계속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이 첫 활용처로 택한 것은 국제송금이다. 미국 내 삼성월렛 호환 갤럭시 기기 8200만 대 이용자는 이달 마지막 주부터 삼성월렛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구매해 해외 가상화폐 지갑이나 거래소 계정으로 수초 안에 송금할 수 있다. 60개국 이상의 적격 은행 계좌로도 송금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취인은 별도의 가상화폐 지갑 없이 현지 통화로 돈을 받을 수 있다. 채 부사장은 “국제송금은 시작점”이라며 “삼성월렛의 글로벌 도달 범위와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없는 특성을 결합하면 활용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서도 이용자가 가상화폐를 쓰고 있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월렛 이용자는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기 위해 별도 앱을 내려받거나 새로운 지갑을 만들 필요가 없고 개인키를 직접 관리할 필요도 없다. 채 부사장은 해외 유학생 자녀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사례를 들며 “한밤중이나 주말에도 언제든 돈을 보낼 수 있다”며 “USDC 같은 디지털 달러를 보내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원석 삼성월렛 북미 그룹장도 이날 삼성월렛에서 기존 결제 기능을 사용하듯 자연스럽게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백 그룹장은 “이용자는 비자나 마스터카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 역시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저 작동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직접 고객 자금을 보유하거나 스테이블코인을 수탁하는 구조는 아니다. 서비스 뒷단에서는 규제 적격 가상화폐 사업자들이 자산 보관과 자금 이동을 담당한다. 바스티온이 스테이블코인 계정과 자금 이동 인프라를 제공하고 코인베이스가 하위 수탁사로 참여해 삼성월렛 내 USDC를 ‘코인베이스 프라임 볼트’에서 보관한다. 송금 때는 등록된 갤럭시 기기에서 생체인증을 거쳐야 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삼성 자체망이 아닌 외부 인프라를 활용한다.
국제송금에 이은 다음 목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다. 삼성전자는 향후 삼성월렛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온라인 결제를 하거나 갤럭시 스마트폰을 매장 단말기에 갖다 대 결제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삼성월렛 안에서 예금과 저축·투자 등 여러 금융 서비스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백 그룹장은 “현재는 당좌계좌와 저축계좌·투자계좌를 각각 관리하려면 돈을 계속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며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여러 금융 서비스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서비스 도입 가능성은 열어놨다. 채 부사장은 국내 서비스 도입 가능 시점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법제화가 안 돼 있어 할 수 없다”면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우선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국내 법 기반 마련에 서비스 제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