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토큰 2049’의 핵심 주제는 인공지능(AI)과 온체인 금융의 결합이었다. AI가 투자 종목을 추천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거래와 결제까지 하는 경제주체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 금융자산도 온체인에서 매매되면서 AI와 금융시장의 융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알렉산더 굿 포스트피앗 최고경영자(CEO)는 7일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는 AI 에이전트’라는 이름의 강연에서 “이미 로빈후드에서 15만 개의 에이전트 계정이 개설됐다”고 밝혔다. 현재는 AI가 투자 판단을 돕고 사람이 주문을 내리는 방식이 대부분이지만 이용자가 투자 목표와 조건만 정하면 AI가 적절한 시장과 거래 경로를 찾아 직접 주문까지 실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I가 직접 결제하는 과정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올해 2분기 기준 AI 에이전트 결제에 활용되는 x402 프로토콜의 결제 거래량 가운데 99.3%가 유에스디코인(USDC)으로 정산됐다. 은행 영업시간이나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결제와 정산을 실행할 수 있어 AI 에이전트 간 거래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AI가 거래할 수 있는 자산의 범위도 전통 금융자산으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주식 같은 금융자산이 토큰화될수록 AI가 접근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시장은 거래시간이 제한돼 있고 국가별 시장도 분절돼 있지만 블록체인 위에서는 AI가 여러 시장의 가격과 유동성을 실시간으로 비교해 24시간 거래를 실행할 수 있다.
요한 케르브라 로빈후드크립토 GM 겸 부사장은 “현재 로빈후드 체인 거래량의 70%가 주말이나 정규 거래시간 외에 발생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미국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뿐 아니라 비상장주식과 다른 시장의 자산도 점점 더 온체인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후드 체인은 로빈후드가 주식 등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거래할 수 있도록 구축한 자체 블록체인이다. 주식을 토큰 형태로 만들어 24시간 거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담보로 활용하거나 옵션 등 다른 금융상품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거래 가능한 자산과 시장이 온체인으로 확대되면 사람이 일일이 거래소를 선택하거나 주문을 넣지 않아도 된다. 투자 목표와 조건만 제시하면 AI가 여러 시장의 가격과 유동성을 비교해 적절한 거래 경로를 찾고 주문까지 처리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이날 행사에서는 실제 이 같은 구조를 구현한 서비스도 소개됐다. 니어프로토콜은 이용자가 원하는 거래 결과만 제시하면 여러 블록체인과 중앙화 거래소 등의 유동성을 활용해 주문을 처리하는 ‘니어 인텐츠’를 운영하고 있다. 일리야 폴로수킨 니어프로토콜 공동 창업자는 “이용자는 자산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누가 유동성을 공급하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원하는 결과만 제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니어프로토콜은 이용자가 자연어로 투자 조건을 설정하면 AI가 기존 포트폴리오와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백그라운드에서 거래를 자동 실행하는 기능도 수주 내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AI가 실제 자금을 운용하기 시작할수록 거래의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과제다. 마이클 하인리히 0G랩스 최고경영자(CEO)는 블록체인이 AI의 행동을 검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기록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AI 에이전트가 과거 기록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AI가 어떤 연산과 판단을 거쳐 거래했는지를 검증하고 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사후에 행동을 추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정보 보호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AI가 포트폴리오와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주문을 내리려면 민감한 금융 정보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폴로수킨 공동 창업자는 “AI가 이용자의 모든 포트폴리오에 접근하는 만큼 AI 자체에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돼야 한다”며 “거래 정보와 AI에 입력되는 요청·응답을 암호화된 상태로 처리하는 기밀 연산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큰 2049’는 세계 최대 규모의 블록체인 행사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2만 5000여 명의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AI 에이전트 시대의 도래와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결제와 정산 문제,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다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