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으로 불려온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15년간 끌어온 체납 세금 약 4000억 원을 전액 내기로 했다. 개인 체납액 기준 국세청 역대 최대 규모의 납부 사례다. 권 회장의 해외 재산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과세당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7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고액체납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 운영 경과’를 발표하고 “권 회장이 체납 후 15년 만에 개인 체납액 3938억 원 전액을 완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지난 7월 현금 1000억 원을 먼저 냈고, 나머지 금액은 분납 계획과 함께 해외 선박 5척을 담보로 제공했다. 국세청은 권 회장 명의의 국내 재산이 없어 해외 소재 선박을 담보로 받았다. 해외 선박을 체납세금 담보로 받은 첫 사례인 만큼 감사원 사전 컨설팅도 진행 중이다. 류충선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간이 평가한 결과 담보가치는 체납액을 초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의 체납은 2011년 세무조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국세청은 권 회장이 홍콩을 거점으로 조세회피처에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해운사업을 하면서 국내에 거주하고도 비거주자인 것처럼 신고했다고 보고 4100억 원대의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권 회장은 자신이 국내 거주자가 아니어서 한국에 낼 세금이 없다는 취지로 과세 처분에 불복했고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류 관리관은 “약 2년 전 대법원에서 국세청이 이기면서 체납으로 완전히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15년간 이어진 체납을 풀어낸 것은 올해 출범한 국세청 고액체납 특별대응TF였다. 국세청은 1월 해외자금추적팀을 시작으로 국제조세관리관을 단장으로 한 TF를 꾸리고 해외 은닉재산 추적에 들어갔다. 해외 지배구조 파악이 필요한 국가에 대표단을 보내고 헝가리·벨기에·영국·라이베리아·뉴질랜드 등과 징수공조를 확대했다. 해외재산 압류를 위해 관련 판례에 대한 연구용역과 법률자문도 진행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권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시도쉬핑 한국영업소에 대한 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아 회계자료와 직원 PC 등을 확보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임 청장은 “라이베리아와 파나마에는 선박의 선적이 많이 돼 있어 어떤 배가 어디에 있는지 현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며 “파나마에서도 굉장히 많이 협조해줬고 영국과도 정보교환이 원활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류 관리관도 “국세청이 해외 선박 관련 국가들과 공조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점도 권 회장 측에서는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회장이 3938억원을 전액 내면 제2차 납세의무가 지정된 관련 법인들의 체납액까지 합쳐 총 7902억원의 체납액이 소멸한다.
국세청은 이번 성과를 계기로 고액체납 특별대응TF를 상설 체계로 전환할 방침이다. 임 청장은 “큰 금액을 납부하고 담보를 제공한 권 회장의 납부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이번 사례가 선한 영향력을 미쳐 체납자들이 강제징수 전에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