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장기채 금리 상승 국면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최근 채권금리 상승분의 절반 이상은 장기채 보유 위험에 대한 추가 보상을 뜻하는 ‘기간 프리미엄’ 확대에 따른 결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호황과 함께 위험 보상 수요가 금리를 밀어 올리는 만큼 한국 증시가 ‘고금리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반도체로 벌어들인 이익이 ‘높아진 돈값’을 상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서울경제신문이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재상승하기 시작한 6월 30일부터 최신 관측일인 이달 2일까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기간 프리미엄 추정 모형(ACM)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10년물 국채 추정금리는 77.7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연은의 ACM은 국채시장 자료를 바탕으로 장기금리 변동을 향후 단기금리에 대한 기대와 기간 프리미엄으로 나눠 분석하는 대표적인 모형이다.
추정금리 상승분 중 기간 프리미엄 상승분은 40.7bp로 전체의 52.5%를 차지했다. 지난달 25일 기준 40.2%(26.5bp)였던 기간 프리미엄의 금리 상승 기여도는 일주일 만에 절반 이상으로 높아졌다. 주목할 대목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추정금리는 11.6bp 올랐는데 기간 프리미엄은 14.2bp 상승했고 단기금리 전망은 2.6bp 하락했다는 점이다. 향후 단기금리 전망의 변화보다 투자자들이 장기채 보유 위험에 요구하는 ‘웃돈’이 최근 국채금리 상승에 더 크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기간 프리미엄이 확대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의 불확실한 재정 전망과 미래 금리의 불확실성을 기간 프리미엄 확대 요인으로 제시했다. 특히 빅테크들이 AI 인프라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공격적으로 회사채를 찍어내면서 장기채 금리까지 덩달아 상승하는 AI 호황의 역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으로까지 자금 조달이 확대되는 모습도 포착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톤브라이어커머셜파이낸스는 약 8억 6900만 달러 규모의 ABS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ABS의 기초자산 중 약 15%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활용됐다. 일정 규모 이상의 GPU 대출이 ABS의 기초자산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과 주식의 평가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장기채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신규 투자·차환 비용이 늘고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를 계산하는 할인율도 높아져 주가를 압박한다.
모두가 돈을 필요로 해 돈값이 비싸지는 상황에서도 증시를 떠받치는 것은 이익에 대한 기대감이다. 팩트셋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올 3분기 이익 전망치는 8008억 달러로 최근 3개월 동안 2.2% 상향됐다. 반면 3분기 동안 지수는 2% 상승하는 데 그치면서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월 말 20.4배에서 지난달 말 19배로 낮아졌다. 주가가 올라도 예상 이익 대비 가격 부담은 줄어 고금리 압박을 견딜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코스피지수가 3분기 19.33% 하락함에 따라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7.69배에서 5.43배로 낮아졌지만 가격 부담이 해소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의 3분기 순이익 전망치는 191조 9423억 원으로 최근 3개월 동안 4.85% 감소했다.
지수와 PER로 역산한 코스피의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약 14.2% 늘었으나 내년 이익까지 반영하는 선행 EPS 상승을 당장의 분기 실적 개선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낮은 PER만으로 국내 증시가 고금리에 강해졌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국내 증시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이러한 부담을 상쇄할 만큼 늘어나는지가 중요하다. 코스피 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은 257조 원대, 반도체는 188조 원대로 전체의 약 73%다. 이달 8일 예정된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실적 발표가 올 4분기와 내년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를 높이는 수준이 될지가 관건인 셈이다.
미국 빅테크의 투자와 한국 반도체의 실적이 연결되는 경로도 구분해야 한다. 미국 플랫폼·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센터 투자는 국내 업체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메모리 매출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AI 서비스 수익성만 높인다면 해당 기업의 주가에는 호재여도 한국 공급 기업의 주문 증가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익을 판단할 때 미국 기술주 상승 자체보다 고객사의 투자 집행과 실제 출하·판매가격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금리가 아직 기업 실적을 압박하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에 금리와 시장 상승이 병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3분기 실적 시즌이 금리 불안을 일정 부분 눌러주겠지만 고금리가 지속된다면 증시가 계속 훈풍을 이어갈 것이라 낙관하기 힘들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