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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은 이렇게 잡아요”…AI 시대, 손글씨에 ‘끙끙’대는 아이들

06.10.2026 1분 읽기

“엄지와 검지에 힘을 더 줘야 해. 한 단어는 중간에 끊지 말고 한숨에 써야 하고.”

이달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글씨 교정 학원. 10평 남짓한 교실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장 김영 씨는 아이들의 손을 직접 잡아 연필 쥐는 자세를 고쳐주며 연신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받는 교육은 학습지에 적힌 예문을 따라 쓰는 것. 학원에 다닌 지 5개월째인 이 모(11) 양은 타이머를 켜놓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한 자 한 자 공책에 옮겼다. 김 씨는 책상 사이를 오가며 글자의 크기와 간격, 띄어쓰기를 꼼꼼히 살폈다.

연필을 쥐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김 씨는 “요즘 아이들은 손필기에 익숙하지 않아 연필을 제대로 잡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거나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키보드와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다시 연필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온라인 학습 확산으로 손필기 경험이 줄어든 상황에서 서·논술형 평가 확대까지 예고되자 글씨 교정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6일 교육계에 따르면 글씨 교정 수요는 최근 학원가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이 학원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정도 수강 문의가 들어왔지만 올해는 하루 한두 건으로 빈도가 크게 높아졌다. 현재 수강생 10명 중 7명 이상은 초등학생이다. 김 씨는 “‘국영수’가 우선이다 보니 예전에는 방학에 수요가 집중됐는데 이제는 학기 중 평일 수업까지 자리가 꽉 찬다”고 전했다. 공공 교육 프로그램에도 비슷한 수요가 확인된다. 서울 마포구평생학습센터가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마련한 ‘바른글씨 글씨교정’ 프로그램은 이달 신청자가 정원을 넘겨 대기자까지 생겼다.

학교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혔던 손글씨가 이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따로 배워야 할 ‘기술’로 변한 셈이다. 교육 내용도 단순히 글씨를 예쁘게 만드는 데 머물지 않는다. 빠르게 쓰면서도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글씨체를 교정하고 장시간 필기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강남구에서 10년째 글씨 교정 학원을 운영하는 강종석(57) 씨는 “의대 준비반에 다니는 초등학생도 많이 찾아온다”며 “아이들이 생각하고 배우는 양은 많아졌지만 이를 손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아이들의 손에서 연필이 멀어진 데는 학습 환경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평등가족부의 ‘2026 청소년 통계’를 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의 주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27.3시간으로 1년 전보다 7.3시간 늘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온라인 학습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공책에 직접 글을 쓰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정보 교육 시수도 기존 17시간에서 34시간 이상으로 확대됐다. 연필과 공책이 차지했던 자리를 키보드와 디지털 기기가 빠르게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교실에서도 감지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필기 수준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8년째 근무하는 교사 박 모(35) 씨는 “시험을 치르면 심한 경우 답안을 ‘해독’해야 할 정도”라며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워 수행평가를 컴퓨터로 치르고 싶어 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전했다.

초등학교에서는 글씨 모양을 넘어 기본적인 필순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례도 나타난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 모(41) 씨는 “고학년인데도 ‘ㄹ’을 아래에서 위로 쓰는 등 기본적인 필순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며 “특히 영어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한글보다 영어 쓰기에 더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 움직임은 글씨 교정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현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학교 내신과 수능에서 서·논술형 문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답을 고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을 직접 써내야 하는 시험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확산하고 있다.

강 씨는 “서술형 확대 얘기가 나온 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고학년의 문의도 늘고 있다”며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게 쓰는 법과 오래 글을 쓰는 지구력을 미리 체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손글씨의 가치가 ‘글씨를 알아보기 쉽게 쓰는 것’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머릿속 생각을 직접 손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는 글을 쉽게 쓰고 지울 수 있지만 손글씨는 정해진 공간에서 글의 분량과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쓰기는 눈과 손의 협응을 통해 여러 인지 기능을 함께 활용한다”며 “어릴 때 손의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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