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상업적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세부 협상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 측이 사업 참여를 기정사실화 한 것이어서 향후 대미투자 이행에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투자 프로젝트 중 하나로 약 540억 달러(약 73조 2000억 원) 규모의 알래스카 LNG 사업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발표 자리에는 알래스카 주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이목을 끈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물론 알래스카를 지역구로 둔 댄 설리번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과 닉 베기치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이 자리한다. 3건의 대미 투자 사업 중 미국은 알래스카 LNG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한국 정부는 그동안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여 왔다. 정치권에 따르면 양국 정부가 구체적인 추진 방향에 합의한 사업은 텍사스 엔시날 LNG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 한 건이다. 대형 원전 8기 건설 사업과 알래스카 LNG 사업은 투자 규모와 세부 조건에 따라 상업적 합리성 충족 여부가 달라져 추가 협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북극에 가까운 알래스카 주 북부에서 채굴한 천연가스를 약 1300㎞에 달하는 42인치 강관을 통해 알래스카 주 남부 니키스키로 수송한 뒤 각국에 수출하는 사업이다. 파이프라인이 고지대를 통과할 뿐 아니라 추운 알래스카에서 일할 근로자를 구하기도 어려워 공사 난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위도 극지방의 영구동토는 얼고 녹는 과정에서 땅이 물러지거나 뒤집힌다는 점도 공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해왔다. 실제 알래스카산 LNG를 생산·수출하려는 구상은 1970년대부터 제기됐으나 번번이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무산됐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사업 역시 2010년대 알래스카 주 중심으로 추진됐다가 2016년 글로벌 에너지 대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 등이 사업비 급등을 이유로 철수해 좌초될 뻔 했던 것을 살려둔 경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알래스카 LNG 사업 추진이 확정됐다면 그 대가로 어떤 유리한 조건을 정부가 확보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며 “미국이 덜컥 발표만 해버리고 나머지 세부 내용은 앞으로 조율해야 한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 역시 “미국 내 공사비가 치솟고 있어 실제 필요한 비용은 현재 추산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며 “지정학적 불안이 해소돼 LNG 가격이 떨어지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알래스카 LNG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화석연료 개발을 장려하는 국정 기조와도 부합하는 데다 알래스카 주가 공화당의 대표적인 텃밭 중 하나여서다. 트럼프 행정부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탓에 11월 중간선거에서 알래스카가 최대 격전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표심 잡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에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문답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가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에 투자를 압박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각각 수조 달러를 투자하길 원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과 공급망 다변화까지 고려하면 알래스카 LNG 사업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포스코인터네셔널은 이미 알래스카 LNG 개발사인 글렌파른(Glenfarne)과 20년간 연 100만 톤의 알래스카산 LNG를 구입하는 내용의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바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 과정에서 강관 납품을 고려한 움직임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석유·가스 사업에서는 초기 투자자들에게 생산량의 특정 비율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배부한다”며 “알래스카는 중동에 비해 가까워 수급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란 전쟁으로 정부는 화석연료 수급 다변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데 알래스카 LNG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