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는 불안정한 원자핵이 안정적인 상태로 바뀌는 과정에서 방사선을 내놓는 원소의 한 종류다. 투과력이 뛰어나고 세포를 죽이는 활성산소를 생성하는 방사선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암 진단이나 치료 등 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이 방사성동위원소를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첨단방사선연구소에 구축된 30MeV(메가전자볼트)급 사이클로트론 ‘RFT-30’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원형 가속기인 RFT-30은 국내 기술로 개발된 최초의 중형급 사이클로트론으로 1.5V(볼트) 건전지 2000만 개에 해당하는 3000만 전자볼트까지 수소 입자를 가속할 수 있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등에서도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지만 RFT-30은 의료·산업용 동위원소의 반복적인 대량생산을 염두에 둔 생산시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하면 양이온과 전자 2개로 이뤄진 수소 음이온을 전자가 제거된 양성자로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해 수소 음이온을 나선형 궤적으로 가속한 뒤 탄소 포일을 통과시켜 전자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를 특정 물질의 원자핵에 충돌시키면 방사선 특성을 가진 각종 동위원소가 생산된다.
연구소는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지르코늄-89를 생산하는 조사 공정부터 분리·정제 장치까지 자체 개발하며 2018년 생산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 이전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항체·면역 연구용 방사성동위원소 지르코늄-89의 수입 의존도는 현재 5% 미만으로 낮아졌다. 지르코늄-89는 반감기가 길어 암을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차세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로 주목받는다. 대량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의료 기관 공급뿐만 아니라 미국·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태국 등에 지르코늄-89를 수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박정훈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장은 “지르코늄-89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 각국의 수요가 훨씬 늘 가능성이 있다”며 “이외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신경교종암 진단용 저마늄-68과 차세대 치료용 동위원소로 각광받는 구리-67의 원료 생산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난치암 진단에 효과적이지만 현재 전량 수입 중인 갈륨-68 발생기의 국산화 연구 개발 사업은 내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략 연구 사업에 선정된 상태다.
한편 연구소는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인프라를 더욱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박 실장은 “35MeV급 사이클로트론을 만들기 위한 중장기 발전 계획을 준비 중”이라며 “향후 인공지능(AI) 기반 자율 운전 제어 시스템과 고순도 방사성동위원소 대량생산 자동화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빔 정밀 측정 장치 및 마이크로 하전입자빔 조사 장치를 도입해 연구소를 방사성동위원소 개발의 아시아 허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사선 신산업 육성을 위해 2006년 전북 정읍에 설립된 KAERI 첨단방사선연구소는 30일 정읍 JB아우름캠퍼스에서 창립 2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정우식 KAERI 원장은 “지난 20년은 방사선 기술이 연구실을 넘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신의 힘임을 증명한 시간이었다”며 “미래를 선도할 융복합 연구를 확대해 세계적 연구 거점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