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좋을 듯해 기록을 찾아보니 3월 30일이다. 삼성전자를 맡고 있는 1진 기자가 당일 아침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이 40조 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는 보고를 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여드레 앞둔 시점이었다. 시장 컨센서스가 37조 원 안팎이라 만약 정확하다면 귀중한 투자 정보이자 특종이었다. 하지만 석 달 전 ‘신기원’이라며 한바탕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2025년 4분기 영업이익이 20조 원이었는데 단숨에 ‘더블’이 되다니 40조 원이라는 숫자에 대한 놀라움과 의문이 함께 엄습했다.
그런데 추가 취재를 당부했던 기자에게선 영업이익 전망치가 40조 원 후반대라는 정보까지 포착됐다. 신문 1면에 기사를 싣기로 했지만 취재한 숫자를 그대로 쓰기는 어려워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40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서울경제신문 보도 후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가 우후죽순 40조 원을 넘더니 급기야 50조 원도 돌파할 것이라는 리포트가 나왔다. 혹시 실적 전망치를 부풀린 진앙지가 될까 염려했는데 4월 7일 발표된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은 57조 2000억 원. 그야말로 ‘어닝서프라이즈’였고 안도의 마음은 잠시뿐 인공지능(AI) 혁명에서 메모리반도체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부족함에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반성의 시간이었지만 웃을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에 실로 엄청난 기회가 왔구나’ 하는 자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온 실적 시즌을 앞두고 이젠 삼성전자의 주주가 아니더라도 경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100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2분기에 이미 90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신고한 만큼 투자자들은 이제 100조 원 넘는 영업이익 앞에서도 심드렁한 듯하다.
그러나 한 기업이 분기 100조 원 넘는 이익을 기록하는 것은 전 세계 기업사를 다시 쓰는 역사라는 수사를 넘어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잠재력을 부여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뒤를 이어 SK하이닉스가 분기 80조 원에 가까운 이익을 공표할 예정이고 보면 ‘반도체 대호황’의 기회를 어떻게 살리고 키워내느냐는 지금 한국 경제가 가장 우선해야 할 화두임이 틀림없다.
단군 이래 최대 호기를 이어가려면 지금의 기회를 누가 만들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변화무쌍한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에서 절호의 찬스 앞에 가장 잘 대처하기 위해 누구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할지 판단할 근거이기 때문인데 K반도체의 초일류를 일군 것은 정부나 국회가 아니라 단연코 기업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생산성 개선에 몰두한 엔지니어 등 근로자들이 있었고 미래를 내다본 통찰력으로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영진과 오너의 기업가정신이 뒷받침됐다. 이병철 창업회장의 혜안, 이건희 선대회장의 결단력, 이재용 회장의 집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전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12년 전 존망의 기로에 선 하이닉스를 최태원 SK 회장이 인수하는 결단을 하는 데 동참한 전문경영인은 1명뿐이었지만 최 회장은 하이닉스 임직원과 합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신화’를 써냈다.
반도체 산업이 특성상 자동차 등에 비해 경제적 파급 효과가 적고 특정 분야에만 성장의 효과가 쏠린다는 지적은 일견 맞고 유념해야겠지만 지금의 AI 열풍과 반도체 메가사이클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글로벌 이벤트다. 3월 말 정부의 소위 ‘전쟁 추경’의 26조 원 재원을 가볍게 거들고 올 초만 해도 1%대에 머물 것으로 우려됐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3.7%까지 끌어올려 발표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내년까지 예약된 반도체 붐이 1년 혹은 2~3년 더 지속된다면 법인세 등 단순 세수 효과만 매년 100조 원 이상이 추가된다.
마침 정부가 앞장서 3대 메가프로젝트의 맨 앞에 반도체를 세우고 지속 성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구체적 액션플랜은 꼭 기업인들의 의견을 우선 반영해 이행하길 바란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위기가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