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제약·바이오 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투자자로 참여하는 ‘투자형 R&D’ 모델 마련에 나선다. 정부가 신약 개발의 위험을 기업과 함께 부담하는 대신 성과가 발생하면 투자금을 회수해 다시 R&D에 투입하는 구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른 부처가 투자 방식을 접목한 R&D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복지부도 신약 개발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모델 설계에 착수해 주목된다.
2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하 보산진)은 최근 6000만 원 규모의 ‘바이오헬스 투자형 R&D 추진을 위한 모델 설계 연구’를 발주했다. 정부가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투자형 R&D 추진계획을 마련한 데 이어 복지부도 신약·의료기기 등 보건의료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투자 구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정부 R&D는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연구비를 출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연구 성과가 대규모 기술수출이나 사업화로 이어지더라도 정부가 투자자처럼 수익을 회수해 다른 연구에 재투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투자형 R&D는 정부가 직접 위험을 분담하고 성공한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성과를 회수해 새로운 R&D에 투입하는 ‘회수→재투자’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 차원의 실험도 본격화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투자 방식을 접목한 R&D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기부도 민간 투자와 정부 R&D를 연계하는 지원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중기부는 내년 예산안에 기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민간협력투자형기술개발(R&D)’을 신설하고 200억 원을 편성했다.
복지부가 별도 모델을 만드는 것은 신약 개발의 특수성 때문이다. 신약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상용화까지 통상 10~15년이 걸리고 임상 단계마다 실패 위험이 높아 일반 산업의 투자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민간 벤처캐피털(VC)도 불확실성이 큰 초기·중기보다 기술 검증이 상당 부분 이뤄진 단계에 자금을 투입하려는 경향이 있어 정부가 장기간 위험을 분담하는 ‘인내자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우선 보산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형 특수목적법인(SPC)과 R&D 투자조합 등 최소 2개 이상의 모델을 비교·설계할 계획이다. 정부와 민간의 출자 비율부터 투자 조건과 한도, 지분 및 지식재산권(IP) 귀속, 후속 투자, 투자금 회수·재투자 방식 등을 구체화한다. 신약의 임상 단계별 마일스톤과 투자·회수 시점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대상 기업과 선정 기준, 표준계약서, 연구 실패 시 처리 방식 등을 포함한 시범사업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관건은 기존 바이오 정책펀드와의 차별화다. 현재도 K-바이오·백신펀드 등 정부가 출자한 바이오 투자재원이 존재한다. 기존 정책펀드가 전문 운용사를 통해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지원 성격이 강하다면 투자형 R&D는 국가 R&D 사업 자체에 투자 방식을 결합해 특정 신약 프로젝트의 연구 성과와 투자·회수를 연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또 하나의 바이오펀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자금이 꺼리는 신약 개발 구간의 위험을 정부가 얼마나 분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제도적 난제도 적지 않다. 국가 R&D 재원으로 기업이나 투자조합의 지분을 취득하고 투자 수익을 다시 연구개발에 사용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정상적인 연구 과정에서 임상이 실패했을 때 투자 결정자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쟁점이다. 책임을 과도하게 물으면 정부 역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만 선택해 제도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 성공했을 때는 기존 기술료와 투자수익의 관계, 정부·기업 간 지분 및 IP 귀속, 투자금 회수 시점 등도 정리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R&D 모법인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은 과기정통부에서 진행하고 있고 복지부에서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보충적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는 단계”라며 “투자를 받는 구조나 SPC를 만드는 부분 등 난도가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워낙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투자형 R&D의 개념은 좋지만 실제 제도로 만들기 위해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