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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 고문 피해자에 국가 배상책임 인정”

23.09.2026

군부독재 시절 대구 미국 문화원 폭파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부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가 아닌 면소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민사소송 2심에서 배상을 받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면소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 관련 대법원의 첫 판단으로 사건이 벌어진지 43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3일 미국문화원 폭파사건 고문 피해자 박종덕 씨 등 4명과 고(故) 우성수 씨의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해 박 씨의 청구만 일부 인용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 삼덕동 미국문화원앞에 있던 가방에서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이다. 박종덕·함종호·손호만·안상학·고 우성수 씨는 수사기관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기소됐다. 박 씨는 국가보안법·반공법·집시법 위반 혐의, 함 씨 등 4명은 집시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은 1984년 1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박 씨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 함 씨 등 4명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 경찰이 대구 미문화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 씨 등 다수의 민간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한 달여 기간 불법 구금했고, 조사 과정에서 구금된 민간인을 폭행하고 진술을 강요한 사실 등이 인정돼 일부진실규명 결정했다. 이들은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따라 재심 절차가 진행됐다. 재심 사건에서 법원은 박 씨와 나머지 피해자들에게 적용된 집시법 위반 혐의엔 “해당 집시법 조항(‘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 부분)이 반성적 고려로 1989년 폐지됐다”며 면소를 선고했다. 박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들에 대한 재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박 씨 등 피해자와 유족은 2020년 8월 재심 판결 전 유죄 확정 판결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박 씨와 가족들에 대해서만 “국가가 6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박 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부분 수사와 재판, 형 집행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1·2심은 면소 판결을 받은 박 씨 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면소 판결을 받지 않았더라면 무죄 판결을 받았을 거라는 개연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박 씨 등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면소사유가 없었다면 무죄 판결이 선고됐을 것이므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심 절차에서 피고인에게 적용된 형벌 법령 폐지로 인해 면소 판결이 확정된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 과정에서 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해 유죄가 선고됐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와 같은 내용의 재심 면소 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죄 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없고,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와 유죄 판결 사이 인과관계가 있는지 별도 심리해 판단해야 한다”며 “경위를 종합하면 면소사유가 없었다면 무죄 판결이 선고됐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뤄진 경우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면소 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단기 소멸시효 기간이 진행된다고 판단했다. 재심 절차에 앞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더라도 재심 사건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일반인이 재심을 통해 유죄 판결의 확정력이 배제되기 전부터 자신이 수사 단계에서 입은 피해와 유죄 판결에 의한 복역 등으로 입은 피해를 구분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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