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농지 전수조사에서 확인되는 관행적 임대차나 고령·상속농의 휴경처럼 투기 목적이 아닌 위반에 대해 일률적인 처분 대신 자진 정비나 농지은행 위탁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 실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관행적 계약은 공식 임대차로 바꾸고,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 불법전용은 사후 추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를 뒷받침할 특별조치법은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후속 대책을 내놨다. 이번 조치는 정부의 기존 원칙을 바꿨다기보다 구체적인 처리 방식을 제시한 성격이 강하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실제 영농 의사 없이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을 노린 취득은 엄정하게 조치하되, 농촌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한 경미한 위반은 별도 방안을 마련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농지 전수조사는 전국의 소유·이용 실태를 한꺼번에 파악하기 위해 올 5월 18일 시작됐다.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136만㏊가 대상이다. 우선 행정정보와 항공사진을 활용해 이상 징후를 가려낸다. 이후 현장에서 실제 이용 상태를 확인한다. 7월 말 종료된 기본조사에서는 284만 필지, 약 27%가 불법 임대차와 무단 휴경·전용, 소유 제한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는 실제 위반이 확정된 수치는 아니다. 정부는 8월부터 현장 중심의 심층조사를 벌이고 있다.
논란은 기본조사가 진행되면서 커졌다. 고령이나 상속으로 직접 경작하지 못하는 소유자뿐 아니라 관행적으로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인까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농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경자유전 원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수조사가 거래를 위축시키고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보완 요구가 이어졌다. 정부는 거래량과 가격 흐름을 근거로 조사와 시장 위축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에는 선을 긋고 있다.
당정은 이번 대책에서 투기성 위반과 농촌의 관행적 사례를 나눠 처리하는 방식을 구체화했다. 명백한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먼저 스스로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이 기간 안에 해결하기 어렵다면 농지은행을 활용할 수 있다. 고령으로 이웃에게 맡긴 땅과 같은 관행적 임대차는 농지은행에 위탁을 신청하면 처분의무 부과를 유예한다. 상속이나 노령화로 경작하기 어려운 휴경지는 직접 복구하거나 관리권을 맡기는 방식이 가능하다. 매수 희망자를 찾지 못해 방치된 경우에도 같은 절차를 검토한다.
기존 임차인이 갑자기 경작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한다.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은 “기존 임대차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농지은행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임대차 관계로 전환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별정비기간은 11월 15일까지 연장된다. 3년 이상 보유한 땅은 이 기간 안에 임대위탁을 신청하면 보완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법령 위반으로 보지 않을 방침이다.
반면 투기성이 뚜렷한 사례에는 현행법을 그대로 적용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으로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농업법인이 땅을 사들여 부동산업에 활용하거나 경매를 통해 지분만 나눠 가진 뒤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은 사례도 대상이 된다. 농업진흥지역을 야적장이나 야영장 같은 비농업용 시설로 불법 전용한 경우에는 원상회복을 명령할 수 있다. 투기 여부는 현장조사와 정황자료, 소유자 소명을 종합해 판단한다.
농지은행의 매입가격도 현장에서 제기되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사들이는 구조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희망하는 경우에만 매도가 이뤄지고, 땅을 팔지 않은 채 임대나 관리만 맡기는 방법도 있다는 얘기다. 매입가는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농식품부는 이 과정에서 공시지가와 지가지수 변동이 반영되고 올해 매입가격도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최근 시세 하락이 감정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법전용 역시 모두 원상회복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신고나 허가 절차를 제대로 밟았다면 설치할 수 있었던 농업용·공공·기타 시설 가운데 일부가 사후 추인 대상이 된다. 정부는 요건을 심사하고 농지보전부담금을 부과한 뒤 적법한 상태로 전환할 계획이다. 반면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로 꾸며 놓고 실제로는 식당을 운영하거나 태양광 발전에만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후 추인하는 대신 본래 용도에 맞게 고치도록 자진 정비기간을 부여한다.
현실적으로 농사를 다시 짓기 어려운 토지에 대해서도 별도 처리 방안을 검토한다. 오랫동안 임야화해 실제 상태와 지목이 다르고 복구 실익도 낮다면 현황에 맞춰 지목을 바꾸는 방식이다. 여러 명이 공동 소유한 경우에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지분 과반수 보유자의 동의를 받아 농지은행에 맡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소유자가 명확하지 않은 미등기 상속지는 재산세 납부자가 대표로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다만 처분유예와 사후 추인을 실제로 시행하려면 새로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당정은 별도의 특별조치법을 마련해 연내 국회 의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예기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입법 과정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기간을 결정할 방침이다. 내년 1분기에는 특별법 시행이 목표로 잡혀 있다. 2분기에는 임대차와 휴경 허용 요건을 손질하는 농지법 개정안도 발의할 계획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 “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꿔 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규정하며 “선의의 농업인·국민들에게는 불이익·불편이 없도록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