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논설위원
곳간이 차오르자 숟가락부터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내년 국세 수입이 크게 늘자 정부는 총지출을 820조 9000억 원으로 불렸다. 증가율은 12.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반도체가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라는 점이다. 호황 때 불어난 세수를 ‘정상 세수’로 여기고 씀씀이부터 늘렸다가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어떻게 될까. 한번 늘어난 지출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국회 예산심의에서도 사업별 증감보다 호황에 기댄 지출 확대가 지속 가능한지부터 따져야 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요 증가로 생긴 세수와 가격 급등으로 늘어난 세수를 구분해야 한다”며 “경기변동을 걷어낸 구조적 세수를 기준으로 나라 살림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정부 지출 증가율 12.8%는 타당한가.
△과도하다. 7~8%면 충분하다. 과거 적극재정을 펼쳤던 시기에도 지출 증가율은 8~9% 수준이었고 코로나19 때도 10%를 넘지 않았다. 지금은 재정 규모 자체가 당시보다 훨씬 커 7~8%만 늘려도 충분한 확장재정이다. 12.8%를 써야 잠재성장률이 올라가고 7~8%를 쓰면 안 올라간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더구나 지금은 명목성장률과 세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까지 큰 폭으로 팽창시키면 총수요를 과도하게 자극해 물가와 자산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이번 세수 호황을 어떻게 활용했어야 하나.
△재정흑자를 만들어 국가채무를 줄여야 했다. 지출 증가율을 7~8% 정도로 잡았다면 약 36조 원을 덜 쓰고 관리재정수지는 30조 원대 흑자를 낼 수 있었다. 160조 원 안팎의 세수 증가는 한국 재정에 정말 ‘단비’ 같은 기회였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면 그다음 해에도 흑자를 낼 여지가 있었다. 두 해 연속 관리재정수지 흑자를 냈다면 한국 재정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
-정부는 “지금 투자해야 성장한다”고 하는데.
△그 논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정을 많이 쓰면 잠재성장률이 올라간다는 식의 접근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수년간 큰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확장재정을 했다. 과거에는 사회투자, 교육, 연구개발(R&D)을 내세웠고 지금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을 강조한다. ‘마중물’이라는 말도 같다. 그래서 잠재성장률이 올라갔나. 일본도 장기간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해법은 뭔가.
△규제 개혁과 ‘인내자본’이다. 민간이 위험이 커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분야에 장기간 저리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첨단 분야의 위험을 정부가 나눠 갖는 것이다. 현금이 풍부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정부가 또 현금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 세계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기업들은 정부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다. 정부가 유망 산업을 골라 보조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성장을 이끌기는 어렵다. 규제를 풀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분담하면서 오래 기다려주는 자본을 공급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는 지속 가능한가.
△가격과 물량을 나눠봐야 한다. AI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 즉 물량이 구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지금 기업 이익과 세수 급증에는 가격 상승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가격은 사이클을 탄다. 중국 업체들이 들어오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도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공급이 늘면 가격 상승 효과는 약해진다. 물량 증가로 생긴 구조적 세수와 가격 급등으로 생긴 일시적 세수를 구분해야 한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앞으로도 계속 들어올 돈으로 보고 지출을 늘리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정상 세수’는 어떻게 가려내나.
△쉽게 생각하면 된다. 정상적으로 세금이 100 들어와야 하는데 120이 들어왔다면 추가 세수는 20이다. 그렇다면 먼저 정상적인 100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세수가 좋지 않았던 전년도를 출발점으로 잡고 과거 10년 평균 증가율을 붙인 뒤 그보다 많이 들어오면 추가 세수라고 한다. 기준점부터 잘못 잡은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이용해 정상적인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구하고 세수탄력성을 적용해야 한다. 경기변동을 걷어낸 구조적 세수를 먼저 계산하고 그보다 더 들어온 돈을 추가 세수로 봐야 한다. 나라의 씀씀이는 정상 세수를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미래기금은 기본적으로 금고다. 돈에 빗장을 걸어 미래 세대에 넘기는 것이다. 노르웨이나 산유국의 국부펀드도 잉여자원을 쌓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세수는 세수대로 쓰면서 국가채무를 늘려 100조 원 넘는 여유자금을 확보한다. 국가 전체 장부로 보면 빚을 내 금고를 채우는 셈이다. 그래서 ‘부채로 만든 세계 최초의 미래기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원금 자체가 빚인데 필요할 때 그 돈을 꺼내 쓰겠다는 게 미래기금의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다.
-‘재정 저수지’와 전략투자, 함께 할 수 있나.
△같이 하기 어렵다. 재정 저수지는 세수가 많이 들어올 때 저장했다가 어려울 때 꺼내 쓰는 것이다. 반면 전략투자는 AI나 반도체 등에 지금 돈을 적극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한쪽은 저장이고 다른 한쪽은 인출이다. 방향이 정반대다. 둘 다 필요하다면 계정을 분리해야 한다. 하나의 주머니에 넣고 안정화도 하고 전략투자도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미래대응기금에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가.
△먼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까지 적립할지 상·하한을 정하고 돈을 꺼낼 수 있는 조건도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 초과세수가 생겼다고 전부 기금으로 보내서도 안 된다. 일정 부분은 국가채무나 공적자금 상환에 자동으로 쓰도록 해야 한다. 숫자를 법에 넣는 것도 방법이다. 앞서 말한 구조적 세수를 기준으로 경기 호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더 걷힌 부분을 가려내야 한다. 미래기금은 현 정부가 편하게 쓸 돈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재정 여력을 남기는 장치다.
-107조 원을 지출 구조조정했다는데.
△구조조정은 결과를 보고 말해야 한다. 다이어트한다고 콜라를 세 병 줄였다고 자랑하면서 사이다를 열 병 더 마셨다면 어떻게 되나. 음료수는 일곱 병 더 먹은 것이다. 지금 지출 구조조정은 “콜라를 줄였으니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꼴이다. 기존 사업을 몇 개 없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새 사업까지 포함해 재량지출 총액이 실제로 어떻게 변했는지를 봐야 한다. 총지출을 12.8% 늘려놓고 줄인 사업만 합산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교육교부금 개편은 제대로 된 구조조정인가.
△교육재정의 과잉 배분 구조는 손봐야 한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데 내국세가 증가할 때마다 교육교부금도 자동으로 늘어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으로 갈 돈을 미래대응기금 같은 다른 계정으로 옮겨 다시 쓰면 이는 지출 구조조정이 아니다. 진짜 개혁이라면 교육에 배분하는 재원 총액 자체가 적정한지 따져야 한다. 고령화로 의료·돌봄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인구구조가 달라졌으면 재정 배분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지방교부세도 같은 방식으로 손봐야 하나.
△교육교부금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 지방은 고령화와 지역소멸 때문에 오히려 재정 수요가 커지고 있다. 지방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과도 연결돼 있다. 중앙정부가 배분한다고 더 효율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세수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늘어날 때 지방에 자동으로 막대한 재원이 내려가는 구조는 적절하지 않다. 초과세수를 처리하는 별도의 원칙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지출해야 한다.
-공기업 부채도 재정 위험으로 봐야 하나.
△정부가 해야 할 정책사업을 공기업에 맡기면 당장은 국가채무로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을 억제하면 한전 부채가 쌓이고 정책 주택사업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맡기면 LH 부채가 늘어난다. 결국 어느 순간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국가채무만 봐서는 실제 재정 위험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공공기관 부채와 보증 등 앞으로 정부 부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까지 함께 봐야 한다.
-2030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0조 원을 넘는다.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다. 100조 원도 세수가 상당히 잘 들어온다는 전제 아래 나온 숫자다. 반도체 기업의 높은 이익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가정도 깔려 있다. 그런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거나 글로벌 AI 투자가 예상보다 둔화하면 어떻게 하나. 세수는 훨씬 빠르게 줄 수 있고 적자는 100조 원보다 커질 수 있다. 지금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정점일 수도 있다. 정점에서 나타난 세수를 우리 재정의 정상적인 실력으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2030년까지 지켜야 할 재정 마지노선은.
△국가채무비율 53%다. 재정준칙에서 60%를 기준선으로 삼는 만큼 7%포인트가량의 완충지대를 남겨두자는 것이다. 평상시에 빚을 한계까지 채워놓으면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가 왔을 때 쓸 카드가 없다. 더 큰 문제는 2030년 이후다. 고령화로 연금·의료·돌봄 지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앞으로 20년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재정 여력을 다 써버릴 때가 아니다. 금융위기는 재정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재정 자체가 위기에 빠지면 마지막 방어선이 사라진다.
He is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훔볼트대 연구 조교수를 거쳐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예산정책처 세수추계팀장과 조세분석심의관 등을 역임하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부터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올해 4월부터 한국재정학회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