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처음 재단 일을 제안받았을 때 내심 망설였다고 했다. 오랫동안 일궈온 문화 사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부담이 컸던 까닭이다. 그는 “제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고사했지만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께서 ‘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인 조영수 명예이사장 역시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힘을 실어줬다. 백 이사장은 김 회장의 차남이자 한세실업을 이끌고 있는 김익환 부회장의 배우자다.
미술과 문학 분야에서 성과를 내오던 재단이 최근 음악으로도 영역을 확장한 데는 백 이사장의 이력이 작용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전면에 서기보다 무대 뒤에서 공연을 완성하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국내에 문화예술경영 전공이 막 생겨나던 시절 대학원에서 이를 공부한 뒤 KBS에서 음악작가로 일했고 이후 약 15년간 ‘스코어리더(Score Reader)’로 활동했다. 스코어리더는 오케스트라 공연 중계 때 총보를 읽으며 다음에 등장할 악기와 연주자를 미리 파악해 카메라가 잡아야 할 장면을 지시하는 전문 스태프다.
첫 무대로 택한 장르는 오페라도, 대규모 교향악 공연도 아닌 독일 예술가곡이었다. 백 이사장은 다른 문화재단들이 해오던 클래식 사업과 겹치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전공을 살릴 분야를 고민했다. 특히 예술가곡은 작품의 가치에 비해 국내에서 전곡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데 주목했다.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의 ‘보리수’처럼 몇몇 곡은 잘 알려져 있지만 연가곡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들어볼 기회는 거의 없어요. 수준 높은 음악인데 한국 관객들에게 제대로 소개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실제 공연으로 이어졌다. 2024년 재단이 주최한 첫 음악회에서는 이미 대중에 알려진 스타급 연주자 대신 유럽의 젊은 성악가를 택했다. 당시 독일의 바리톤 베냐민 아플을 초청해 선보인 한여름의 ‘겨울나그네’는 “보기 드문 신선한 기획”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세계적인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호흡을 맞춘 올해 두 번째 음악회 역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백 이사장이 다음 단계로 그리고 있는 것은 개별 사업을 넘어선 ‘문화예술 플랫폼’이다. 재단이 10여 년간 쌓아온 동남아시아 문화예술 네트워크와 국내 문화예술 기관을 연결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외부 문화예술 기관과의 협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재단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아시아 문화예술 발전 및 교류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 서울문화재단과도 손을 잡았다. 서울문화재단과는 기초예술 분야 유망 예술가 발굴과 창작 지원, 한·아세안 문화예술 교류에 협력하기로 했다. 예술가 창작 공간과 예술 교육센터를 연계한 창작 지원을 비롯해 공동 프로젝트, 예술가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협력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백 이사장은 그동안 다져온 인문학과 문학·미술을 토대로 음악까지 재단의 문화예술 사업을 균형 있게 키워간다는 구상이다. 그는 “각 사업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면서 더 많은 예술가와 관객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며 “문학과 미술·음악을 아우르며 문화예술 교류의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