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문한 SK이노베이션(096770) 울산컴플렉스(울산CLX). 여의도 3배에 달하는 826만㎡(약 250만 평)의 거대한 부지에 크고 작은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공정 시설을 떠받친 철골 구조물도 붉게 녹슬어 사방이 갈색빛을 띠었다. 그러나 사무실로 들어서자 풍경은 180도 바뀌었다. 중질유 분해공정(HOU) 조정실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는 인공지능(AI)이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가동 상태를 찾아내는 첨단 공정 제어(APC) 시스템이 쉼 없이 깜빡였다. SK이노베이션이 전사적으로 추진 중인 ‘듀얼 브레인(Dual Brain)’의 가동 현장이다.
듀얼 브레인은 SK이노베이션이 울산CLX에 이식 중인 차세대 운영 체계다. AI의 연산 능력과 숙련된 엔지니어의 경험, 두 브레인을 결합해 울산CLX 공정을 24시간 분석·판단하겠다는 구상이다. AI가 공정과 설비의 이상 징후를 선제적으로 탐지해 대응 방안을 내놓으면, 현장 엔지니어가 상황을 종합 검토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 판단 결과는 다시 데이터로 축적돼 AI의 다음 분석에 반영된다.
SK이노베이션이 듀얼 브레인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울산CLX의 운영 효율 극대화에 있다. 60년 역사의 울산CLX는 98개 복합 공정에서 하루 84만 배럴을 정제하는 국내 최대 원유 처리 시설이다. 하루 3000명의 작업자가 연간 33만 건에 달하는 정비·보수 작업을 수행한다. 이처럼 방대한 공정 관리를 현장 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AI를 투입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담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정창훈 울산CLX 제조AI 팀장은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놓칠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라며 “AX(AI 전환)으로 우리 업의 본질을 해결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듀얼 브레인의 핵심 축은 공정 최적화, 설비 신뢰성, 안전·보건·환경(SHE) 등 세 가지다. 정유·화학 밸류체인의 통합 마진을 극대화하면서도 365일 무중단 가동을 유지하고, 인명 및 화재 사고 없이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체 구축한 핵심 무기가 설비 진단 플랫폼 ‘SKADI’다. SKADI는 펌프와 압축기 등 핵심 회전기기의 진동과 온도 변화를 AI가 실시간 모니터링해 이상 원인을 잡아낸다. 분석 데이터는 곧바로 정비 계획 AI로 넘어가 최적의 보수 시점과 작업 계획을 제안한다. 회사는 여기에 예측 AI를 접목해 2028년까지 설비 진단 범위를 넓히고 판단 정확도를 대폭 끌어올릴 방침이다.
안전·보건·환경을 뜻하는 ‘SHE’를 구현하는 관제 플랫폼 ‘쉴드(SHEILD)’도 있다. 사람 중심의 현장 순찰을 AI 기반의 24시간 현장 관제로 전환해 고위험 작업 현황 등 안전 데이터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정 팀장은 “AI가 울산CLX의 관제탑이자 관제사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형 데이터 수집을 위해 로봇개와 드론도 투입됐다. 현재 현장에 배치된 로봇개 1대를 향후 10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듀얼 브레인 도입으로 연간 약 1000억 원 규모의 생산성 개선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검증된 듀얼 브레인 시스템의 대외 사업화도 구상 중이다. 정 팀장은 “비즈니스화가 돼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며 “SK그룹 내 IT 회사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60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정유공장으로 출발한 울산CLX를 60년 뒤에는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듀얼 브레인으로 운영되는 공장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