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가 늘면서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었지만 이를 착용한 피해자가 살해되는 사건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의 신고에 의존하는 사후 대응만으로는 범행을 막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위험성이 높은 가해자를 사전에 적극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피해자가 살인·살인미수 범죄를 당한 사례는 총 26건으로 집계됐다. 살인 15건, 살인미수 11건이다. 연도별로는 2022년 8건, 2023년 1건, 2024년 5건, 2025년 9건이었다.
올해도 9월까지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피해자가 살해된 사건이 3건 발생했다. 이달 1일 경기 광주에서는 60대 여성이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피해자는 앞서 가정폭력을 네 차례 신고해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고 112 시스템에도 등록돼 별도 관리를 받고 있었다. 사건 당일 스마트워치로 신고한 지 3분 만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해자가 흉기에 찔린 뒤였다.
두 달 전 경기 성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 교제했던 50대 남성에게 보복 살해당한 60대 여성 역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경찰이 신고 후 3분 안에 도착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3월 경기 남양주에서는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스토킹 피해자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가해자에게 살해됐다.
사건이 잇따르면서 스마트워치의 피해 예방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위치정보가 경찰에 전송되는 방식이어서 계획적으로 이뤄지거나 순식간에 벌어지는 범행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계성 범죄 증가에 따라 스마트워치 지급은 확대되고 있지만 사전 예방 수단으로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마트워치 지급 건수는 2022년 1만 4208건에서 지난해 2만 1974건으로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도 7월까지 1만 5209건이 지급됐다.
반면 전자발찌 부착이나 유치 등 가해자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잠정조치는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해 적극적인 활용에 제약이 있다. 실제 인용률도 높지 않다. 전자장치 부착에 해당하는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3호의2 신청은 2024년 325건에서 지난해 862건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1537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법원 인용률은 같은 기간 각각 32.6%, 37.2%, 33.2%에 그쳤다. 가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4호도 올해 상반기 1710건이 신청됐지만 인용된 것은 391건(22.9%)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가해자 분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채 피해자의 신고에 의존하는 스마트워치가 사실상 ‘궁여지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관계성 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지와 생활 반경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고위험 가해자에 대한 선제적인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위험성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우선 가해자를 구금해 피해자가 거처를 옮기는 등 안전 계획을 세울 시간을 확보하고 석방 이후에는 전자장치와 애플리케이션으로 동선을 추적한다”며 “분리 조치를 결정할 때 범죄의 결과뿐 아니라 재범 위험성을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쇄회로(CC)TV 설치나 민간 경호 등 스마트워치 이외의 보호조치를 확대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채 의원은 “광주 가정폭력 살인 사건으로 경찰과 법원 등 관계기관의 신변 보호조치에 한계가 드러났다”며 “피해자 보호조치가 ‘사후약방문’에 머물지 않으려면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사전 예방에 방점을 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