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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한 명 낳아 키웠을 뿐인데… ‘돈·시간·경력’ 전부 내려놔야 했다

12.09.2026 1분 읽기

우리 사회의 이슈와 현상을 짚어봅니다. 그 배경과 흐름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전합니다. <편집자주>

평일 오후 6시. 회사원 A씨의 두 번째 하루는 퇴근 후 시작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직장 상사가 웃는 타이밍에 맞춰 인사를 한 뒤 서둘러 회사를 나섰다. 일찍 퇴근하기 위해 매일 1시간 먼저 출근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어린이집을 나선 아이는 “내가 제일 늦게 집에 간다”며 “늦은 시간에는 아기들하고 같이 있으니 너무 심심하다”고 투덜된다. 어린이집에서는 오후 3시 30분부터 6시까지 0~6세를 한데 모아놓고 돌본다.

아이를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나면 어느새 오후 9시가 넘는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고, 다음 날 아이가 입을 옷을 꺼내놓는다. 아침에 먹을 것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아침에는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는 도우미가 오지만 식사 준비는 부모의 몫이다. 맞벌이를 하는 A씨 부부에게 퇴근 후 시간은 휴식 시간이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다.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더 걱정이에요”

최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결혼을 늦추는 청년, 치솟는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출산 후의 현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과연 키우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을까.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단순히 돈만이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기본이고 부모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누군가 곁에서 돌봐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교육 문제로 같이 고민해야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부모의 일상 전체가 흔들린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족 전체의 시간과 자원을 끊임없이 배분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에는 조부모도 포함된다.

‘내년 1월생부터 수당 더? 그럼 올 12월생은?’

이재명 대통령이 9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7월 1일 이후 출생아를 자녀로 둔 부모는 아이맞이지원금은 최대 2000만 원, 아동기본수당은 최대 3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아이맞이지원금과 아동기본수당은 현재의 첫만남이용권과 부모급여, 아동수당을 통합·개편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6월 30일 이전 출생아 부모보다 7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의 부모가 최대 3000만 원까지 더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맘카페에서 원성이 높아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7월 1일생이 행정 편의에 따라 차별받으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며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하면 어떨까 싶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국회가 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시행 기준일을 1월 1일로 앞당겨도 논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올해 12월 31일생이 억울하게 되기 때문이다. 출산 예정일이 시행 기준일 코앞일 경우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 날짜를 미룰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아이를 낳는 순간 시작되는 ‘비용의 시간’

부모들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필요한 돈은 기저귀값이나 분유값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육아 필수품인 기저귀나 분유 가격부터가 부담이 된다. 프리미엄 제품이나 외국산 상품을 사지 않더라도 그렇다. 아이가 성장하면 지출 항목도 함께 늘어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에 있는 시간과 부모가 돌보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 비용이 든다. 학원을 보내야 하고 아이돌봄 도우미를 고용해야 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소비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영유아 1인당 월평균 양육비는 2020년 61만 원에서 2024년 78만 5000원으로 늘었다.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 8000원이었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 보면 월평균 지출액은 60만 4000원에 달했다. 참여율은 75.7%이었다.

이 비용은 어디까지나 평균치다. 모든 부모들이 같은 금액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지역과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이다. ‘우리 아이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 이 질문 앞에서 부모들은 쉽게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아이가 원해서 보내는 학원도 있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니기 때문에 뒤처질까 걱정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명이 시작하면 다른 부모들은 따라가는 구조다.

돈보다 더 부족한건 시간…‘조부모 찬스’ 의존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만큼이나 큰 문제는 시간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지는 매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출근 시간과 어린이집 등원 시간, 퇴근 시간과 하원 시간이 맞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갑자기 열이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으면 부모 중 한 명이 회사를 쉬어야 한다. 조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긴급돌봄 서비스를 찾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조부모 찬스’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부모가 일을 하기 위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의 노동이 필요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맞벌이가 일반적인 삶의 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한 명의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전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돌봄 공백 시간이 생긴다. 조부모 찬스를 쓰거나 도우미를 고용해 그 시간을 메우더라도 부모가 할 일은 남아 있다.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숙제를 봐주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함께해야 한다. 부모의 하루는 회사와 집이라는 두 개의 일터를 오간다.

한정된 시간과 돈…그럴 거면 ‘한 명에게 집중’

저출산은 이제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가 됐다. 아이를 적게 낳으면 돈과 시간, 노력이 덜 들어갈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를 적게 낳는 사회에서 부모들은 오히려 한 명의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2025년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자녀 수가 적은 가구일수록 학생 1인당 사교육비와 참여율이 높게 나타났다. 자녀가 한 명인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51만 8000원이었다. 세 명 이상인 가구의 1인당 35만 8000원보다 많았다.

아이를 적게 낳는 사회가 한 명의 아이에게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만들고 늘어난 양육 부담은 또다시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여러 명 낳았을 때 모두를 잘 돌보고 모두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상당수 부모들은 ‘적게 낳고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자’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다는 현실 앞에서 부모의 고민은 계속된다.

일하자니 애한테 죄책감…쉬자니 경력단절 걱정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부모들은 일을 계속할 지, 그만둘 지도 선택해야 한다. 일을 계속하자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회사를 관두자니 경력단절이 걱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15~54세 기혼여성 가운데 경력단절여성은 121만 5000명에 달했다.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육아(41.1%)였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중단하는 순간,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길도 멀어졌다.

그렇다고 일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의 나이가 어릴 수록 더 그랬다. 통계청의 2024년 지역별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여성 고용률은 62.4%였다. 자녀가 6세 이하인 경우 55.6%로 낮아졌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면 직장생활까지 흔들린다. 퇴근 후에는 육아가 기다린다. 결국 부모들은 일하면 아이에게 미안하고, 쉬면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는 딜레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휴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복직 후 중요한 업무를 맡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좋지 않은 인사 평가를 받아 승진하지 못할까하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휴직을 선택했지만 경력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도 든다.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이유다. 부모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한다. 휴직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이 키우기가 개인의 희생이 돼서는 안돼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오롯이 부모들이 부담하게 해서는 출산율을 늘리기 어렵다. 특히 맞벌이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부모 한 명이 일을 줄이거나 그만둬야만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면 육아는 결국 개인의 희생이 된다. 부모가 일을 계속하면서도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운영시간과 근무시간 사이의 돌봄 공백을 줄이고, 아픈 아이를 위한 긴급돌봄 서비스 등 현실적인 지원책도 촘촘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출산지원금처럼 현금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7세 자녀를 둔 한 부모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경력과 소득, 휴식 시간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모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부모와 함께 나누는 사회가 돼야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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