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국가채무를 106조 원 늘리면서 미래대응기금에는 이와 맞먹는 여유자금 104조4000억 원을 쌓으려는 것은 ‘빚을 내 현금을 비축하는’ 모순된 구조라는 재정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세수 호황기에는 대규모 기금 적립보다 국가채무 상환을 우선하고, 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해 확보한 재정 흑자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재정학회장인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10일 국회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과 자유기업원이 주최한 ‘미래대응기금? 미래저당기금 162조 정권쌈짓돈’ 긴급진단 토론회에서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운용 계획을 “중대한 정책적 오류”라고 규정했다.
김 회장은 미래대응기금 162조3000억 원 가운데 사업비와 국채 신규 발행 감축분을 제외한 104조4000억 원을 여유자금으로 쌓아두는 계획을 문제 삼았다. 내년 국가채무 증가액 106조 원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조1000억 원에 불과한데도 국가채무를 106조 원 늘리는 동시에 104조 원이 넘는 현금을 기금에 적립하는 구조라는 게 김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이를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미리 찾아 현금으로 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황상현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여유자금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미집행 여유자금을 대폭 축소하고 국가재정법의 취지에 맞게 추가 세수의 최소 50% 이상을 신규 적자국채 발행 축소 및 기존 국채 상환에 강제 배정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특히 저금리 국채의 만기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이자 부담도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내년 42조 8000억 원으로 R&D 예산 39조 5000억 원을 웃돌고 2030년에는 53조 3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김 회장은 국가채무에 적용되는 평균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2030년 이자비용이 약 70조 원에 달해 국방·R&D 등 핵심 재정지출을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금 재원도 오래가기 어렵다는 예상이 나왔다. 추가세수 산식상 세수가 급증하는 2027년 실적이 기준에 반영되는 2029년부터 신규 재원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기금을 “2년 쓰고 버리는 대일밴드”라며 늘어난 세수를 모두 쓰고 빚까지 동원해 재정을 현 정부 임기에 집중시키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의 재원과 지출 목적이 투명하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재원의 정의는 신조어에 기대 모호하고 지출 목적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에 여유자금까지 아우를 만큼 넓으며 통제 장치는 느슨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정부안의 12.8%에서 7.8%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이는 지출을 줄이는 긴축이 아니라 증가 폭을 5%포인트 낮추는 방안이다. 이전·현금성 지출과 금융성 출자 등 26조 5000억 원을 조정하고 일부 신규 현금급여 도입 시기를 늦추면 정부안보다 지출을 약 36조 원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따라 관리재정수지는 3조 1000억 원 적자에서 33조 1000억 원 흑자로 전환된다. 2028년에도 지출 증가율을 5.4%로 관리해 20조 원의 흑자를 낸 뒤 2년간 확보한 53조 원가량으로 국가채무를 먼저 갚자는 구상이다. 추가세수가 이어지는 것이 확인되면 2029년부터 흑자를 기금에 적립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추가세수 외에 연중 세입예산보다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초과세수도 국채 상환 대신 기금에 넣을 수 있도록 지난 3일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현행법의 ‘국채를 우선 상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빼고 초과 조세수입을 국채 상환이나 기금 전출에 쓸 수 있도록 했다. 국채 상환에 부여됐던 문언상 우선순위가 사라져 기금 전출이 동급의 선택지가 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