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버스기사를 왜 해요!”
한때 사회적기업을 운영했던 강희정(42) 씨는 ‘버스기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업에 실패했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그였다. 빚을 갚기 위해 택배 상하차, 물류센터, 공장, 입주 청소 등 땀 흘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고많은 직업 중에 버스기사라니. 그것도 젊은 여성이?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리 주위에 사랑이 없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강 씨는 2014년 우간다 어린이들에게 티셔츠를 보내는 ‘굿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우간다에 방문했을 당시 “입던 옷이라도 좀 달라”고 사정했던 현지인들의 모습이 아른거려서다. 이후 3년간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한 강 씨는 2017년 사회적기업 ‘굿워크플래닛’ 기부카페를 설립했다. 음료 구입 시 500원짜리 기부코인을 제공, 손님이 그 코인을 사랑통에 넣으면 이웃에게 선물이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익은 나지 않는데 월세와 공과금은 매달 빠져나갔다. 설립 초기 충만했던 사랑은 온데간데없었다. 결국 굿워크플래닛은 2021년 문을 닫았다.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했던 강 씨의 세상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자기 자신이 ‘실패한 사람’ 같았던 그는 움츠러들었다.
남은 건 빚이었다. 온갖 몸 쓰는 일을 했던 강 씨에게 아버지는 버스기사를 제안했다. ‘버스 차고지는 60대 아저씨들의 세계 아닌가?’ 강 씨는 “안 해요. 제가 그걸 왜 해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버스기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점차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약속된 급여를 받는 것. 사업으로 망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버스기사가 되면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겠구나. 얼마나 많은 얼굴을 만나게 될까. 그 순간,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조금 뛰었다.” (책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中)
지난 8월 에세이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를 펴낸 강 씨를 3일 경기도 안양시 소재 버스 차고지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새벽 첫차부터 오후 3시까지 버스를 탄 승객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고 오는 길이었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스를 몬다는 강 씨는 2년차 버스기사다.
“안녕하세요, 버스기사 강희정입니다”
-책 제목에 인사말이 눈에 띄어요. ‘안녕하세요’ 한 마디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버스를 타는 승객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라고 할까요. ‘안녕하신가요?’ 물어보는 동시에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이죠. 인사를 건네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입밖에 꺼내지 않으면 더 힘들더라고요. 원체 어릴 때부터 인사 잘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책 제목을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로 지은 건, 버스기사가 되기까지의 여정과 버스기사로서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유튜브 출연 후 책 출간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마을버스 첫 출근날 제 모습을 찍어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 영상이 하루 만에 조회수 1만회를 찍었는데, 한 인터뷰 전문 채널에서 출연 제안이 왔어요. 제목은 ‘30대 후반에 사업 망한 그녀가 버스기사가 된 이유’였는데, 그게 대박이 났어요. 응원 댓글도 많이 달려서 평생 받을 위로를 다 받은 것 같았죠. 운 좋게 출판사에서도 해당 영상을 보고 책 출간 제의를 해주셨어요.
-1년간 마을버스를 몰다가 최근 시내버스로 자리를 옮기셨다고요. 어떤 게 달라졌나요?
△지역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마을버스를 몰았을 땐 하루 평균 운행거리가 약 220킬로미터(km)였어요. 하루 18시간 동안 운전했죠. 대신 다음날은 쉬는 격일 근무제였어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시내버스로 옮기고나서 근무 환경이 좋아졌어요. 2교대(오전반·오후반)로 일하고, 주 2일 쉬는 식이죠. 한 번 운행 시 2시간 정도 돌고, 쉬는 시간은 30~40분 정도 돼요. 마을버스 당시에 쉬는 시간이 10분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훨씬 나아졌죠. 월급도 올랐어요. (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시내버스 기사 초봉은 4000만~5000만원대로 형성돼 있다. 2025년 기준 경기도 준공영제 시내버스 5년차 세전 월급여는 485만원이다.)
-버스기사가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요. 필요한 자격증과 서류는 산 넘어 산이었고, 과정마다 시간이 소요됐어요. 가장 오래 기다린 건 화성에서 진행되는 버스 운전자 양성 교육이었어요. 실제 도로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트랙에서 운행 연습을 하는 건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고 대기 기간도 길었어요. 저는 운 좋게 3개월쯤 기다린 뒤 빈자리가 나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우리 기수는 100명 정도였는데, 그 중 여성은 저뿐이었어요.
-실제 현장에서는 남녀 성비가 어떻게 되나요.
△이것도 지역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체감상 안양에서는 버스기사 20명 중에 1명 정도가 여성인 것 같아요. 처음 들어왔을 때만해도 젊은 여성 기사가 저밖에 없다 보니 선배 기사님들도, 승객분들도 놀란 기색이 있었어요. ‘운전 제대로 하겠어?’ 이런 이야기도 들렸고요. 기죽지는 않았어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죠. 잘 달리는 모습을요.
버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강 씨가 일하고 있는 경기도 버스기사 성비는 남성이 96.5%, 여성은 3.55% 수준이었다. 2024년에는 여성 운수종사자 비율이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으나, 2025년에는 통계에 잡힐 만큼 늘었다.
-요즘 신입 연령대도 젊어지고 여성 지원자도 많아졌다고요.
△전반적으로 젊은 기사가 많이 유입되면서 버스기사 업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 따르면 신입 경쟁률도 몇 배로 치열해지고 젊은층·여성 지원자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해요. 면접에서 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고, 제게 다가와 “‘강땡스’ 유튜브 보고 지원했다”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정말 신기한 일이죠.
실제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20·30세대 버스기사는 2022년 7559명에서 2025년 1만389명으로 37% 늘었다.
-버스기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열심히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다만 체력적으로 못 버티거나 사고 위험 등으로 인해 금방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어요.
버스기사로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현실적으로 운전실력이겠죠. 그런데 제 생각엔 ‘인내심’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앞차, 뒷차와의 배차 간격을 잘 맞추면서도 나의 페이스대로 나아갈 수 있는 인내심.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차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인내심.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해요.
-근무환경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요.
△하루 18시간씩 일했던 마을버스 당시에는 점심도 잘 못 먹었어요. 어느 지역이든 회사든 최소한의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보장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버스 내 음식 반입 금지 조례 같은 것도 지역마다 달라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개인적인 하소연이지만 서서 가는 승객들은 꼭 손잡이를 잡아줬으면 해요. 손잡이를 안 잡는 승객들도 많은데, 그러다 사고가 나면 책임을 기사에게만 지우는 경우도 있거든요. 기사도 불안하고, 승객도 위험하기 때문에 손잡이 관련해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직업을 거쳐 버스기사가 되셨어요. 작가님의 종착지는 어떤 곳이 될까요.
△제가 정한 목적지는 없어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을 땐 목표가 뚜렷했어요. 닿지 않는 지향점을 잡으려 앞으로 달려만 갔죠.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를 놓치고 살았어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정작 제 하루 안에 사랑이 없었어요. 앞으로는 오늘 하루를 똑바로 보고 즐기면서, 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요. 그러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좋은 종착지에 가게 되지 않을까요?
버스를 몰고, 사람을 만나며 하루하루 잘 사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강 씨는 “점점 사랑이 피어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며 웃었다.
“버스를 운전하며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운전 실력이 아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예전에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사람이 먼저 찾아온다. 그러니 오늘도 깨어 있으려고 한다. 혹시라도 내 앞에 걸어 들어온 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 (책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中) 승객들의 마음을 매만져주는 기사가 되고 싶다는 강희정 씨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