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기 영국 총리인 리즈 트러스는 퇴임 후에 펴낸 ‘서방 세계를 구할 10년’에서 그가 물러난 2022년 당시의 시장 혼란은 상당 부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불러왔다고 적었다.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에 늦은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이 뒤늦게 기준금리를 급히 올린 게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그해 3월 연 1.72%였던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0월에 4%까지 치솟았다. 7개월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트러스는 “이것이 영국과 주요국에 연쇄효과를 불러왔다”고 했다.
트러스는 2022년 9월 6일 취임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를 포함한 45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와 600억 파운드의 에너지 보조금 지급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마거릿 대처가 롤모델이었던 그는 높은 세금이 영국을 경기침체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시장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재정적자 우려에 영국 국채금리가 급등했고 파운드화는 역대 최저인 달러당 1.03파운드까지 주저앉았다. 글로벌 금리 상승에 안 그래도 취약했던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중앙은행(BOE) 개입도 재무장관 경질도 소용없었다. 금융시장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트러스는 44일 만에 쫓겨나듯 사퇴했다.
영국이 위기를 맞은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국채금리 상승이 방아쇠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금리는 한 나라의 정권을 바꿀 정도로 파괴적이다. 2013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QE) 축소 발언에 글로벌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일어났던 것도 마찬가지다.
2026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상승하고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주요국의 국채금리가 뛰고 있다. 여기에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깔려 있다.
국채의 상대 가격도 한몫한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4.8%에 육박하고 30년물이 5.2%를 오르내리면서 투자자들은 다른 나라 국채에 더 많은 금리(채권가격 하락)를 요구한다. A 상점에서 1000원짜리 물건을 900원에 팔면, B 점포 주인에게 “시가는 900원”이라며 할인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3% 수준으로 상승한 일본 국채금리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은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다. 6월 말 현재 1조 1167억 달러어치를 들고 있다. 일본 국채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는 글로벌 큰손인 일본 투자자들이 자국으로 돌아올 이유를 제공한다. ‘엔캐리트레이드(값이 싼 엔화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것)’의 청산이다. 일본이 미 국채를 사지 않으면 금리는 더 오른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엔화에 개입하고 일본 금리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수급 요인이 있지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2025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국고채 10년 금리는 1.5%포인트가량 상승했다.
국고채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인상의 원인이 된다. 금리는 커다란 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유층과 서민을 가리지 않는다. 2000조 원의 빚을 이고 있는 가계는 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1년 이자가 5조 원 불어난다. 돈을 빌린 액수만큼 똑같이 나눠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기업에 미칠 영향도 중요하다. 10년물 미 국채금리가 5%를 돌파하면 약한 곳부터 하나둘씩 금이 갈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도 미 국채금리가 5%를 넘었다. 자금 흐름이 바뀌면서 장기 미래투자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거품이 끼었던 곳은 더하다. 이는 국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산업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미국 주도로 글로벌 시장이 안정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최악의 상황도 준비해야 한다. 미 재무부가 바이백(재매입)에 나서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를 안 내리면 적자국과 무역거래를 끊겠다”까지 떠드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금융 시장에 신경을 곤두세울 때다. 컨틴전시 플랜도 필요하다. 지금의 금리 상승을 부동산 투기꾼을 때려잡을 기회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둡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