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겸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특별 훈장을 수여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군의 맹렬한 공세로 우크라이나 지상의 핵심 기지국과 광케이블 등 통신망이 파괴된 위기 속에서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안보와 국방에 지대한 기여를 한 공로를 공식 인정받은 셈이죠. 그런데 스타링크가 현실 전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다급해진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유럽연합(EU)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의 독자 위성망 구축 행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국면으로 돌아가면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상공에 활성화되자 최전선의 군 지휘부는 스타링크 단말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황을 공유하고 타격 좌표를 조율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무인기(드론) 작전을 원격으로 수행하며 러시아군의 허를 찔렀죠. 우크라 전쟁에서 드론은 전황을 뒤집은 핵심 무기로 꼽힙니다. 지상 인프라가 황폐화된 와중에 저궤도 위성망이 현대전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스타링크의 리스크도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머스크는 2022년 12월 갑자기 확전과 핵전쟁을 우려한다는 자의적인 판단 아래 크림반도 인근 등 특정 교전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스타링크 서비스 를 거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해상 드론을 활용한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작전이 무산되는 등 군사 작전이 직접적인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이는 통제가 불가능한 기업에 국가의 핵심 안보 인프라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일련의 전시 상황은 EU가 외부의 개입이나 기업의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소버린 위성통신망 구축에 다급하게 속도를 내도록 만드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EU 행정부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초 유럽우주국(ESA), EU우주계획청(EUSPA) 및 유럽 우주항공 산업 기업들과 함께 IRIS²의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이행 협정 협상을 타결하고 서명식을 가졌습니다. ‘IRIS²(Infrastructure for Resilience, Interconnectivity and Security by Satellite)’는 EU의 자체 위성 통신망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IRIS²의 규모와 통신 역량이 초기 설계보다 대폭 확장되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협정에 따라 저궤도(LEO) 등 66기의 위성이 추가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체 핵심 군집위성의 규모는 저궤도 위성 330기, 중궤도 위성 18기 등 총 348기로 대대적으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단순히 통신 커버리지를 넓히는 것을 넘어 적국의 방해 전파나 사이버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위성망 확장을 통해 EU 내 정부 기관의 안전한 통신 용량은 기존 계획 대비 6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사시 위기 대응에 필요한 유럽의 독자적인 군사 및 행정 임무 수행 능력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는 것이죠. EU는 2029년까지 첫 위성 발사를 실현하고 본격적인 운영 연결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개시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확정 지었습니다.
관건은 예산입니다. EU는 2028년부터 2034년까지 배정된 EU 자체 예산에 더해 각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며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안보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국가들의 다급함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6억 5600만 유로, 헝가리가 5억 유로의 추가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스페인은 무려 16억에서 20억 유로에 달하는 대대적인 국가 차원의 투자를 발표하며 힘을 싣고 있습니다. 그동안 EU는 여러 합동 프로젝트에서 국가별 예산 문제로 삐걱거렸던 적이 많았는데 안보 문제만큼은 합심하는 분위기입니다.
공공-민간 파트너십(PPP)으로 진행되는 IRIS² 프로젝트는 SES, 유텔샛(EUTELSAT), 히스파샛(HISPASAT) 등 유럽 3대 위성 사업자로 구성된 스페이스라이즈 컨소시엄이 주도합니다. 여기에 에어버스 디펜스 앤 스페이스, 탈레스 등 현지 대표 우주·방산 기업들이 대거 합류했습니다. 로드리고 다 코스타 EUSPA 사무총장은 “IRIS²의 이행 단계 돌입은 유럽의 우주 및 안전한 연결 생태계에 있어 중대한 도약”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소버린 우주 인프라는 국가의 존망과 안보를 결정짓는 핵심 주권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도 독자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2035년까지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놓은 가운데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