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고, 피었다 사라지는 모습이 허무하면서도 풍요로워요.”
지난달 도쿄 인근 마쿠하리 해변. 여자친구와 함께 불꽃축제 ‘하나비’(花火)를 찾은 20대 일본인 남성 A씨는 불꽃놀이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연인과 편안하게 불꽃축제를 즐기기 위해 유료석을 구매한 적이 있다는 그는 수십만엔에 달하는 프리미엄 좌석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리 그래도 30분~1시간 남짓 진행되는 불꽃놀이에 수십만엔이라니 비싸다”며 고개를 저었다.
여름 밤하늘에 찰나 동안 피었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 그러나 축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무더위 속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길거리 음식을 나누던 모두의 축제가 돈을 낸 만큼 편의와 시야를 제공받는 경험 상품으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450만원 캠핑카석도 완판…‘가격표’ 붙은 불꽃축제
오는 19일 일본 이바라키현 사카이마치에서 열리는 ‘도네가와 대불꽃축제’에서는 최대 6명이 이용할 수 있는 캠핑카 관람석이 50만엔 (한화 약 450만원)에 판매됐다. 에어컨과 화장실, 전용 테이블 등을 갖춘 상품으로 준비된 3석은 모두 팔렸다.
초고가 상품이 등장했다고 해서 일본의 불꽃축제가 모두 비싸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변화는 관람 상품의 가격대가 위아래로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제국데이터뱅크(TDB)가 평년 10만명 이상이 찾는 주요 불꽃축제 106곳을 조사한 결과, 올해 84곳(79.2%)이 유료 관람구역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5곳은 지난해보다 유료석 가격을 올렸다.
가장 저렴한 일반석의 평균 가격은 5517엔(한화 약 4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4.4% 올랐다. 반면 가장 비싼 프리미엄석 평균 가격은 4만611엔(한화 약 35만원)으로 7.4% 상승했다. 2023년과 비교하면 일반석은 약 16%, 프리미엄석은 약 23% 올랐다. 일반석과 프리미엄석의 가격 차이는 7.36배로 조사 이래 가장 컸다.
수천엔대 좌석은 더위와 혼잡, 장소 선점의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가족·젊은층을 겨냥한다. 수만엔대 프리미엄석은 더 좋은 조망과 넓은 공간, 편의시설 등을 원하는 수요가 주 고객이다. 방일 외국인이나 특별한 날을 보내려는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다만 가격만 높인다고 팔리는 것은 아니다. TDB는 1만~2만엔대 좌석 가운데 가격에 걸맞은 부가가치가 부족한 상품은 판매가 부진하거나 매진되지 않는 사례도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예전엔 전석 무료였는데”…유료석 선택 이유는
이런 변화는 실제 관람객들의 경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7월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열린 ‘도요타 오이덴 불꽃축제’를 친구와 함께 찾았다는 20대 일본인 남성 B씨는 현장에서 약 5000엔(한화 약 4만원)을 썼다고 했다. 도요타 오이덴 축제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지만 별도의 유료 협찬석도 운영한다.
B씨는 지난해 ‘나가라가와 불꽃축제’를 찾았을 때 유료석을 이용했다. 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무료로 원하는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고 불꽃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유료석이 아니면 좋은 위치에서 관람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무료로 걸어 다니면서 불꽃을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서 보는 관람이 제한돼 있어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 유료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엄석에 대한 생각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전망이 좋고 소파 등이 갖춰진 프리미엄석이 평균 4만엔 수준이라는 이야기에 그는 “불꽃축제 운영에 협찬비가 도움이 된다면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있어야 행사가 개최되기에 괜찮다고 본다”고 했다.
다카마쓰 지역 불꽃축제에서 음료 한 잔이 포함된 약 3000엔(한화 약 2만6000원)짜리 유료석을 이용한 30대 일본인 여성 C씨도 비슷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라면 돈을 낼 만하다고 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수고와 혼잡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축제 열 돈이 없다”…안전·인건비가 유료화 부추겨
유료화의 배경에는 축제 운영비 급증이 있다. TDB에 따르면 올해 주요 불꽃축제 106곳 가운데 5곳은 개최를 취소했거나 개최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지역 실행위원회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에 더해 경비비, 인건비, 물가 상승 등이 축제 운영을 압박하고 있다. 불꽃 원료와 설치 장비, 관람석 구조물 비용도 올랐다.
특히 대규모 인파를 관리하는 안전 비용은 줄이기 어렵다. 전문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이동 동선을 통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면서 관람객에게 직접 비용을 부담시키는 축제가 늘고 있는 것이다.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2025년도 ‘이타바시 불꽃축제’ 결산을 보면 전체 수입 2억7966만엔(한화 약 24억4000만원) 가운데 유료석 수입이 1억4963만엔(한화 약 13억원)으로 53.5%를 차지했다. 유료석 수입이 축제 재정에서 절반을 넘는 핵심 재원인 셈이다.
다만 티켓 매출이 그대로 순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타바시구는 유료석 관련 비용으로 약 8961만엔(한화 약 7억8000만원)을 지출했고, 불꽃 발사에 약 7072만엔(한화 약 6억1500만원), 행사장 설치에 약 5755만엔(한화 약 5억원), 안전대책에 약 3813만엔(한화 약 3억3000만원)을 투입했다.
안전 비용이 유료화의 주요 동인이라는 점은 니가타현 ‘나가오카 마쓰리 대불꽃축제’에서도 확인된다. 나가오카는 행사장 내 관람석을 전면 유료화했고, 2024년에는 경비비와 안전대책비 증가를 이유로 일반판매 티켓 가격을 전년보다 평균 1.3~1.4배 올렸다. 축제 재단 측은 예산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경비비용을 꼽으며 안전 관련 지출은 줄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01년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발생한 불꽃축제 압사 사고도 일본의 대규모 행사에서 군중 안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보행자 다리에 인파가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쳤다.
6년 만에 부활한 미야지마 불꽃축제…“올해는 보류”
그렇다고 하나비의 유료화가 오로지 편의와 안전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불꽃놀이 자체가 일본인에게 여전히 강한 문화적·관광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현 미야지마의 불꽃축제는 약 50년 전 주민을 위한 여름축제로 시작해 한때 5000발 규모의 지역 대표 행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관람객 안전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2019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이후 지역 기업 등이 중심이 돼 2025년 ‘이쓰쿠시마 수중 불꽃축제’라는 새로운 형태로 6년 만에 부활했다. 2500발의 불꽃을 약 30분간 쏘아 올렸고, 공식 관람석은 전부 유료로 운영됐다. 개인 협찬석은 1만3000엔(한화 약 11만원), 크루즈 관람석은 3만엔(한화 약 26만원) 수준이었다.
6년 만의 부활을 직접 보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한 사람들도 많았다. 페리 승선권을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미야지마 곳곳에는 아침부터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한 관람객들이 자리했다.
특히 바다 위에서 터지는 수중 불꽃과 세계문화유산인 이쓰쿠시마 신사의 대토리이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사진 애호가와 관광객들이 일본 각지에서 몰렸다.
다만 이 축제 역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주최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개최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제반 사정이라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도 ‘프리미엄 관람’ 시장 커진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서도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여전히 한강공원 일대에서 무료 관람이 가능하지만, 혼잡을 피하고 편안한 시야를 원하는 이들을 겨냥한 유료 상품이 대거 늘어났다.
한화가 직접 운영하는 ‘오렌지 플레이존’은 올해 700석 규모로 마련됐으며 좌석 가격은 11만~22만원선이다. 민간 유통·호텔업계가 내놓는 관람 상품의 가격표는 훨씬 비싸다. 여의도 한강변 인근 스타벅스는 불꽃축제 패키지를 2인 기준 20만~30만원에 판매했고 최고가 상품은 단 30초 만에 완판됐다. 여의도 일대 호텔의 한강 뷰 객실은 축제 기간이 되면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다만 양국의 재원 구조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의 지방 불꽃축제는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과 자치회, 지자체가 자원봉사 형태로 떠받쳐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령화와 지역 소멸로 기존 방식이 한계에 다다르자 관람객에게 직접 비용을 징수하는 자립형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서울세계불꽃축제는 대기업 후원을 중심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국 전통적 방식의 한계에 봉착한 일본이 선택한 유료 좌석은 축제의 생존을 위한 구조적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기업조사기관 제국데이터뱅크(TDB)는 이번 조사 보고서를 통해 “지역 주민의 불만이 일부 나오더라도 안전 관리비 증가와 인력 부족 속에서 불꽃축제를 지속하기 위한 ‘타당한 가격 설정’ 모색은 불가피하다”며 “향후 불꽃놀이는 모두가 무료로 즐기던 대중행사에서 지불한 비용만큼의 체험 가치를 제공하는 ‘경험형 소비’로의 구조 개편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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