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서 4년째 네일숍을 운영하는 박 모 씨는 요즘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만 해도 보복소비를 타고 예약이 꾸준히 들어왔지만 최근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서다. 박 씨는 “손님들도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이웃 가게와 가격을 비교한다”며 “할인 행사를 하지 않으면 예약을 잡기 어렵고 예약 플랫폼 수수료와 재료비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게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자영업 점포 수가 지난 2년 반 동안 약 3만 9000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물가와 고금리 속에 지역 주민의 소비에 의존하는 동네 자영업부터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특히 호프집과 옷가게, PC방 등 전통적인 생활형 업종이 줄어든 반면 피부관리실과 스포츠클럽 등은 늘면서 소비 변화에 따른 자영업 구조 조정도 진행되는 양상이다.
5일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서울의 자영업 점포 수는 62만 4791개로 2023년 4분기(66만 3473개)보다 3만 8682개(5.83%) 감소했다. 서울 자영업 점포 수는 엔데믹 이후 증가해 2023년 4분기 정점을 찍은 뒤 올 2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줄었다. 이는 신규 창업까지 반영한 순감소분으로, 새로 생긴 점포를 고려하면 실제 문을 닫은 점포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별로는 주민 소비 의존도가 높은 서울 외곽 지역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은평구의 점포 수는 2023년 4분기 2만 1425개에서 올 2분기 1만 9491개로 9.03% 줄어 감소율이 가장 높았다. 강북구(-8.66%), 중구(-8.51%), 노원구(-8.25%), 구로구(-7.72%)가 뒤를 이었다. 반면 종로구(-2.89%), 마포구(-3.33%), 성동구(-3.56%), 서초구(-4.26%), 강남구(-4.87%) 등은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았다.
업종별로도 이른바 ‘동네 장사’형 업종에서 감소세가 가팔랐다. 2023년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일반의류 점포는 5만 866개에서 4만 5374개로 5492개(10.80%) 줄었다. 호프·간이주점은 1만 8412개에서 1만 5255개로 3157개(17.15%) 감소했다. 치킨전문점(6541개→5742개, -12.22%), PC방(1421개→1140개, -19.77%), 수산물판매점(6075개→5063개, -16.66%) 등도 줄줄이 감소했다.
내수 부진으로 매출이 위축되는 가운데 임대료와 인건비·원재료비 등 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았던 업종은 점포 간 경쟁까지 겹치면서 타격이 컸다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네일숍은 5371개에서 4247개로 1124개(20.93%), 휴대폰 판매점은 7316개에서 6141개로 1175개(16.06%) 줄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부동산 중개업도 크게 위축됐다. 부동산중개업 점포는 같은 기간 4만 3784개에서 3만 6005개로 7779개(17.77%) 감소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고금리와 대출 규제 등의 여파로 부동산 거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업소 간 경쟁은 심해지고 중개수수료 수입은 줄었다”며 “웬만한 동네에서는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유흥·오락 중심의 여가 소비가 건강관리 등으로 옮겨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당 기간 피부관리실은 7673개에서 1만 720개로 3047개(39.71%) 증가했고 25개 자치구 모두에서 점포 수가 늘었다. 스포츠클럽은 4501개에서 5330개로 829개(18.42%), 애완동물 관련 업종도 2173개에서 2715개로 542개(24.94%) 증가했다. 특히 홍대·연남·합정 등 술집 거리가 즐비한 마포구에서는 호프·간이주점이 342개(23.05%) 줄었는데, 피부관리실이 500개에서 754개로 254개(50.80%) 급증하며 자리를 대신했다.
광진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최 모 씨는 “예전처럼 2차·3차까지 술을 마시는 손님이 많이 줄었고 한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술이나 안주도 줄었다”며 “임대료와 인건비·식재료비는 계속 올라 장사를 할수록 적자”라고 토로했다. 그는 “건대 앞 메인 상권은 여전히 붐비지만 예전만큼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둘러싼 경영 여건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올렸다.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는 1년9개월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섰다. 금리 상승은 대출을 낀 영세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가계의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비용 부담과 매출 감소라는 ‘이중고’를 키울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필수지출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올 2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식비 지출은 89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3% 늘었는데 소득 하위 20~40%와 하위 20% 가구는 각각 6.9%, 6.1% 증가해 상위 20%(1.8%)보다 증가 폭이 컸다. 식비 등 필수지출이 늘면 외식이나 의류 등 선택적 소비 여력이 줄어 동네 상권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높은 자영업 비중과 생계형 창업이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은퇴한 중장년층이, 혹은 폐업자가 다시 자영업으로 유입되지 않고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영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 코로나19 당시 자영업자가 크게 늘어난 만큼 최근 점포 감소에는 과잉 공급이 조정되는 측면도 있다”며 “무분별한 현금성 창업 지원으로 다시 자영업 시장으로 유입시키기보다 폐업한 자영업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취업과 직업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가 인건비 부담으로 고용을 줄이면서 임시·일용직 등 취약한 일자리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며 “20대 미취업 청년과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한 30~40대는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연령과 기존 경력에 맞춘 재취업·전직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퇴직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중장년층들이 공급과잉인 자영업 시장에 계속 유입되고 있다”며 “임금 수준을 조정하더라도 퇴직 이후 계속 일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을 만들어 생계형 창업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