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3일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 시행 지침을 발표했지만 산업 현장의 파업 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장 신설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쟁의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신설 조직 가동에 필요한 인력 재배치(배치전환)는 교섭·쟁의 대상으로 열어뒀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은 ‘쟁의가 가능해지는 시점’을 둘러싼 새로운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지침에 따르면 공장 신설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구체적인 인력 운영 계획이 수립·결정돼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 변화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면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경영상 결정 자체와 이에 따른 근로조건 변화를 구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에서는 둘을 떼어놓기 쉽지 않다. 신설 공장에 기존 인력을 투입하려면 근무지나 담당 업무 변경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통상적인 인사 배치까지 노사 쟁점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숙련 인력 투입이 필수적인 삼성전자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등 첨단 제조업에서는 이 문제가 투자 실행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핵심 엔지니어 배치를 둘러싼 교섭이 장기화되거나 쟁의로 이어질 경우 공장을 완공하고도 제때 가동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발생할 수도 있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예상 완공 시점(2030년)으로 3년 정도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자본과 기술뿐 아니라 적기에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역량도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불확실한 노동 규제가 국가 전략 프로젝트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기관 이전 결정 자체는 경영상 결정에 해당해 쟁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전에 따른 직원 전보·발령 계획이 구체화돼 근로조건 변화가 예상되면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직원은 원칙적으로 일반 근로자 신분인 만큼 개별 기관의 노사관계에 따라 이전 과정에서 쟁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영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인력 재배치를 지렛대로 활용한 우회적 교섭 전략이다. 노조가 공장 신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이후 인력 배치나 근무지 변경, 임금·복지 문제 등을 묶어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쟁의 대상이 아닌 요구는 변경하도록 권고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지도를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투자 반대’와 ‘배치전환·임금’ 등 여러 요구가 하나의 교섭안에 섞일 경우 어디까지를 쟁의 대상으로 인정할지를 놓고 노사 간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배치전환을 둘러싼 쟁의 가능성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노조가 근무지 이전에 따른 주거 지원이나 이전 지원금 등을 과도하게 요구하면서 이를 공장 신설과 연계할 경우 기업이 마냥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사권과 근로조건의 경계를 둘러싼 법적 판단이 장기간 이어지는 사이 공장 가동이 지연되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비용도 커진다. 실제 파업에 돌입하지 않더라도 배치전환을 둘러싼 쟁의 가능성만으로 투자 실행 과정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신설 조직에 인적 자원을 배분하는 통상의 인사권까지 쟁의 대상이 되면 대규모 투자 차질로 직결될 수 있다”며 “신규 채용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핵심 인력의 배치가 막히면 완공된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인사·경영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성과의 사후적 분배와 인사권에 기인한 통상의 인력 재배치까지 쟁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해석은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기업의 내부 유연성을 봉쇄하고 고용의 외부화를 낳는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단체협약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내리는 절차”라며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인사배치권까지 의무적 교섭 대상으로 밀어 넣어 사실상 노사 공동결정 영역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교섭 의제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 수립 시점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여부인데 시점을 강조한 것은 경영권 사항을 쟁의 대상으로 포함하려다 생긴 기교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